[천자 칼럼] 칠천량 해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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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음력) 밤 왜선 5~6척이 내습해 우리 전선 4척을 불태워 침몰시켰습니다. 창졸간에 병선을 동원하며 어렵게 진을 쳤지만 닭이 울 무렵에는 더 많은 왜선이 몰려왔고 주변 여러 섬에도 가득 깔렸습니다.”
《선조실록》에 나오는 칠천량 해전 당시의 장계(보고서)다. 1597년 정유재란 발발 첫해, 거제 앞바다 칠천량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한 해전이다. 잠결에 놀란 병사들은 전투태세를 갖출 새도 없이 허둥대다 왜군의 총칼에 쓰러졌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술에 취한 채 호령만 할 뿐 통제권을 완전히 잃었다.어떻게 경계를 섰기에 적병이 배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도 모를 정도였을까. 원균은 앞서 부산포의 왜군을 치려고 출전했다가 적의 교란작전에 말려 고전을 거듭했다. 기진맥진한 병사들을 이끌고 기항한 칠천도는 정박하기에 불리한 곳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야간 기습을 당했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원균의 전력은 왜군보다 우위에 있었다. 전임 통제사 이순신에게 물려받은 전선 134척에 수군 1만7000여 명, 화약 4000근, 총통 300자루까지 갖췄다. 그런데도 참패했고, 자신도 도망가다 죽고 말았다.
조선 수군은 왜 이런 치욕을 당했을까. 당시 조정에서는 중신들이 당파싸움을 벌이며 이순신을 옥에 가두고 원균을 새 사령탑에 앉혔다. 병사들은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한 과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술과 기생에 빠져 규율을 스스로 흔드는 바람에 영(令)도 서지 않았다. 한마디로 리더십의 실종과 지휘권 붕괴를 자초했다.전투 중에도 아군의 행동을 적에게 노출시키고 적정 감시를 소홀히 해 기습을 허용했다. 왜군의 장기인 백병전을 허용하고 불리한 장소로 후퇴한 데다 경계마저 실패했다. 이순신이 밤낮 탐망선을 띄워 적을 살핀 것과 대조된다.
여기에 임금의 무능과 당쟁까지 겹쳤다. 오죽하면 사관(史官)이 《조선왕조실록》에 ‘백방으로 상대를 모함하고 그 자리에 앉은 뒤 큰소리를 쳤으나 지혜가 고갈되어 군사가 패하자 배를 버리고 사졸들을 고기밥으로 만들었으니,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녹으려 한다’고 썼을까. 40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지 새삼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선조실록》에 나오는 칠천량 해전 당시의 장계(보고서)다. 1597년 정유재란 발발 첫해, 거제 앞바다 칠천량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한 해전이다. 잠결에 놀란 병사들은 전투태세를 갖출 새도 없이 허둥대다 왜군의 총칼에 쓰러졌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술에 취한 채 호령만 할 뿐 통제권을 완전히 잃었다.어떻게 경계를 섰기에 적병이 배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도 모를 정도였을까. 원균은 앞서 부산포의 왜군을 치려고 출전했다가 적의 교란작전에 말려 고전을 거듭했다. 기진맥진한 병사들을 이끌고 기항한 칠천도는 정박하기에 불리한 곳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야간 기습을 당했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원균의 전력은 왜군보다 우위에 있었다. 전임 통제사 이순신에게 물려받은 전선 134척에 수군 1만7000여 명, 화약 4000근, 총통 300자루까지 갖췄다. 그런데도 참패했고, 자신도 도망가다 죽고 말았다.
조선 수군은 왜 이런 치욕을 당했을까. 당시 조정에서는 중신들이 당파싸움을 벌이며 이순신을 옥에 가두고 원균을 새 사령탑에 앉혔다. 병사들은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한 과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술과 기생에 빠져 규율을 스스로 흔드는 바람에 영(令)도 서지 않았다. 한마디로 리더십의 실종과 지휘권 붕괴를 자초했다.전투 중에도 아군의 행동을 적에게 노출시키고 적정 감시를 소홀히 해 기습을 허용했다. 왜군의 장기인 백병전을 허용하고 불리한 장소로 후퇴한 데다 경계마저 실패했다. 이순신이 밤낮 탐망선을 띄워 적을 살핀 것과 대조된다.
여기에 임금의 무능과 당쟁까지 겹쳤다. 오죽하면 사관(史官)이 《조선왕조실록》에 ‘백방으로 상대를 모함하고 그 자리에 앉은 뒤 큰소리를 쳤으나 지혜가 고갈되어 군사가 패하자 배를 버리고 사졸들을 고기밥으로 만들었으니,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녹으려 한다’고 썼을까. 40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지 새삼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