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D삼호 회장 "디벨로퍼는 미래를 파는 사람…분양가 이상의 가치 주는게 1원칙"

1세대 디벨로퍼 김언식 DSD삼호 회장

공공택지사업은 붕어빵사업
리스크 없이 수익 낼 수 있지만
사냥해서 먹이 구하는 게 더 가치

식사지구 '위시티 일산자이' 애착
“신도시형 확장 정책으로는 서울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없습니다. 초고층 개발 등 획기적인 도심집약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

대한민국 1세대 대표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사업자) 김언식 DSD삼호 회장은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심 고밀도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도권 외곽에 신도시를 짓는 방식의 공급정책은 ‘유령도시’가 돼버린 일본 다마신도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김 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공급한 디벨로퍼다. 개발사업 외길을 걸으면서 웬만한 신도시 규모인 4만여 가구 주택을 쏟아냈다. 올해로 회사 설립 40주년을 맞은 최장수 디벨로퍼기도 하다. 경기부침이 심한 개발업계에서 이례적인 기록이다.

그는 “‘고객에게 분양가 이상의 가치를 돌려준다’는 원칙을 지키며 진심으로 일을 즐긴 게 장수 비결”이라고 말한다. 국내 디벨로퍼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그에게 40주년을 맞은 소회와 부동산시장 안정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최장수 디벨로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디벨로퍼는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파는 사람입니다. 다 개발한 뒤가 아니라 개발 전에 청사진만 갖고 사업합니다. 아파트를 짓는 시공업 등과 비교하면 사업 리스크가 훨씬 크지만 반대로 그만큼 많은 이익을 낼 수도 있죠. 돌아보면 직접 했던 역할은 1%에 불과했어요. 나머지 99%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했습니다. 조력자들이 나를 도와 일할 수 있도록, 쉽게 말해 배가 항구로 갈 수 있도록 등대 역할만 하면 됐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있으면 남도 움직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척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자신만의 원칙이 있나요.“‘고객이 내게 지급한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를 돌려주는 것’입니다. 내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행복해하면 나는 그 10배의 행복을 느낍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제대로 된 집을 짓기 위해 도시개발사업에 주력합니다. 공기업이 조성한 공공택지나 신도시사업은 쳐다보지 않아요.”

▷공공택지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공택지 사업은 틀에서 찍어낸 붕어빵입니다. 짧은 시간 내 큰 리스크 없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디벨로퍼 입장에서 땅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땅을 사고 이익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지역에 미치는 영향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능력이 있는 회사가 진짜 디벨로퍼입니다. 공공택지가 먹이를 받아먹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냥을 해서 먹이를 마련하는 셈이죠. 물론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듭니다. 김포시 ‘풍무 푸르지오’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사업을 진행했고, 경기 광주 ‘힐스테이트 태전’은 부지 매입에서 입주까지 17년이나 걸렸습니다. 1998년 부지를 매입해 내년에 분양하는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애착이 가는 사업장을 꼽는다면.

“경기 고양 식사지구의 ‘위시티 일산자이’입니다. 유일하게 실패한 애증(愛憎)의 아파트이자 내 인생의 아파트로 꼽을 만합니다. 실패라기보단 회사가 재정적으로 손실을 봤습니다. 금융위기 여파로 10년에 걸쳐 분양했습니다. 수요를 제대로 못 읽어서 대형 면적대 위주로, 고급화 위주로 승부한 게 패착이었죠. 하지만 작품으로서는 가장 공을 들였고 가장 성공했습니다. 조경 비용만 600억원을 들였을 정도였으니까요. 700억원을 기부해 고양국제고도 유치했습니다. 그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그 짐도 덜 수 있게 됐습니다. 서울(상암)~문산(임진각) 간 고속도로가 연내 개통되면 단지에서 여의도, 마곡지구까지 10분대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고속도로 개통을 위해 물밑에서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경기 북부를 대표하는 고급 주거단지로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값 불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의 집값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를 지어 외곽으로 확장하는 방식은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닙니다. 도심 내 개발에 주력해야 합니다.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 수요자 성향을 보면 도심에 거주하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직주근접’을 원하는 거죠. 1971년 조성된 일본 도쿄 인근의 ‘다마 신도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국의 분당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도쿄 신주쿠역까지 철도로 이어진 데다 녹지 비율도 높아 꿈의 신도시가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계획인구의 절반도 안 사는 유령도시가 됐죠.”

▷도심에 개발할 땅이 부족합니다.

“재개발·재건축 때 용적률을 대폭 완화해주고 늘려준 만큼 소규모 임대주택을 건설하면 됩니다. 지금도 서울시에서 일부 시행하고 있지만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재개발·재건축을 하면 앞으로 수십 년은 그 땅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올바른 주택 정책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충분한 공급이 가능한가요.

“조합 입장에서는 용적률 층수 분양가 등 원하는 것을 얻고 정부는 대규모 재원 투입 없이 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압구정현대아파트를 이런 식으로 초고층으로 지으면 1만 가구 이상의 임대도 넣을 수 있습니다. 서울에는 30만~40만 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시장과 대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민이 원하는 걸 수용해주고 얻을 것은 얻으면 됩니다. 이 경우 임대주택 토지는 기부채납을 받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조합으로부터 정부가 임대를 받는 구조여야 합니다. ‘토지임대부 주택’ 방식인 셈이죠.”

▷소셜믹스(단지 내 분양 및 임대아파트 공동 조성) 문제 등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과거 임대주택이 실패한 것은 지나치게 소득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을 한 단지에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신혼부부 위주로 기회를 주면 큰 문제 없습니다. 기존 중장년 조합원 입장에서도 단지에 활력이 생기고 좋습니다. 소셜믹스 문제는 1차적으로 젊은 세대와 중견세대 콘셉트로 접근하는 게 맞습니다. ”

▷향후 40년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가요.“아파트 위주의 상품을 공급했던 것과는 달리 아파트, 학교, 병원, 호텔, 위락시설 등을 모두 포함한 풀서비스가 가능한 복합개발 단지를 조성할 생각입니다. 최근 아파트만 놓고 보더라도 단지 내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는 토지 규제가 심하고 땅값도 많이 올라 한계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이라크 등 아직 개발할 용지가 많은 해외 저개발국에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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