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금융시장은 반등, 실물경기는 냉각…괴리↑

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 지수가 2112포인트, 11.37% 폭등했습니다. 1933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으로, 125년 미 증시 역사상 다섯번째로 높게 오른 날로 기록됐습니다.

이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곧 '2조달러' 규모의 재정 부양책에 합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데다, 전날 미 중앙은행(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선언으로 자금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Fed의 '헬리콥터 머니' 투입은 채권과 주식시장 등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는 장초반 54까지 떨어졌습니다. 지난 19일 85 수준에서 대폭 낮아졌지요.

또 AAA등급 지방채의 금리는 이날 연 2.64%까지 낮아져 지난 7년래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어제 Fed의 발표 직후 급등했던 국채 값은 소폭 하락해 안정을 찾았습니다. 열흘째 오름세를 유지하던 달러인덱스도 소폭 내렸습니다.

사실 이날 현재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금 가격이었습니다. 금 값은 이날 온스당 100달러, 6% 안팎까지 급등했습니다. 현물가격은 온스당 1640달러 수준까지 올랐고, 4월물 선물은 온스당 1687달러까지 급등했습니다. 이는 하루 기준으로는 11년만에 최고 상승률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그동안 현금확보 수요와 마진콜 등으로 인해 매도가 집중돼 금 값이 폭락했었지만 금융시장이 Fed의 개입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으면서 금에 대한 안전자산 수요가 되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금융시장 안정에도 실물 경제는 여전히 멈춰있고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금 가격이 폭등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금 시장에선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현물과 4월물 가격이 장중 70달러까지 벌어진 겁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어제까지만 해도 이 가격차이는 15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유는 실물경제 셧다운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골드바를 생산하는 스위스의 3개 업체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골드바도 수송망이 붕괴돼 현물을 매입한 투자자에게 가져다주기 어려워진 겁니다.

이날 세계최대 금거래소인 런던귀금속거래소(LBMA)는 딜러버리 이슈가 있음을 공지했고, 뉴욕상품거래소(COMEX)와 수송 문제 논의에 나섰습니다. "현물 포지션을 줄일 수는 있지만, 늘릴 수는 없다"고 고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금을 사도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커지자, 현물 수요는 줄고 4월 선물 수요가 증가해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겁니다. 또 4월물 값이 6월물, 12월물 가격보다 높은 백워데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금융시장 안정과 관계없이 실물경기는 여전히 악화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날 채권시장이 안정됐지만, Fed의 매입대상인 투자등급 회사채와 매입대상이 아닌 투기등급 정크본드의 스프레드(금리 차이)는 더 벌어졌습니다.

특히 셰일회사들이 몰려있는 에너지 하이일드본드의 스프레드(국채 대비)는 23.2%포인트까지 확대됐습니다. 이렇게 높은 스프레드는 투자자들이 사실상 40% 가량은 파산할 것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실물경기 추락은 이날 발표된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의 3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에서 확인됩니다.

3월 서비스업 PMI는 39.1로 떨어져 전달의 49.4에서 크게 낮아졌습니다. 2009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저입니다. 제조업 PMI는 그보다는 낫지만 49.2로 역시 전달 50.7에서 하락했습니다. 영국 일본 유로존 등의 PMI도 일제히 급락했습니다.

또 신용평가사들은 자금난을 맞게된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날 S&P글로벌은 델타항공의 신용급등을 'BBB-'에서 'BB'로 두 단계나 떨어뜨려 정크본드로 강등했습니다. 피치는 보잉의 장기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하향했습니다.

이날 뉴욕 증시 상승은 낙폭과대에 따른 반등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일종의 '데드캣 바운스'라는 얘기입니다.

지난 한 달간 67% 급락했던 보잉은 이날 20% 상승했습니다. 또 80% 넘게 추락했던 셰일업체 아파치는 29.4% 반등했습니다. 52% 하락했던 씨티그룹은 14.9% 올랐고, 40% 떨어졌던 갭도 29% 폭등했습니다.

보잉과 금융사들이 급등하면서 다우의 상승폭(11.37%)는 S&P 500지수(9.38%), 나스닥(8.12%)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이날 매수동력 중 하나가 리밸런싱 수요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펀드는 포트폴리오를 정해 미리 자산을 배분합니다. 만약 국채 5, 주식 5 비중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놓은 펀드가 있다고 한다면 이 펀드는 지금 국채를 팔고 주식을 편입해야합니다.

그동안 국채 값이 급등하고, 주식은 폭락해 비중이 7 대 3 수준 정도로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맞춰야 벤치마크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1분기말 미국 연기금의 주식 리밸런싱 수요가 2140억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펀드별로 자산 리밸런싱 시기는 천차만별"이라며 "골드만의 분석처럼 많지는 않겠지만 일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숏(매도)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상당한데 갑자기 10%가 넘게 치솟자 숏커버링이 나타났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날 S&P500 지수도 사상 열번째 최고 상승률 기록을 세웠습니다.

기존 기록을 보면 2위가 대공황 직전인 1929년 10월30일(12.5%)이고, 6위와 7위는 글로벌 금융위기 초입이던 2008년10월13일(11.6%)과 2008년10월28일(10.8%)입니다. 금융위기 때 뉴욕 증시는 2009년 3월에 바닥을 찾았지요. 사실 지난 3월13일에도 9.3% 올랐습니다.

월가의 한 투자자는 "단기에 30% 넘게 떨어졌기 때문에 상당한 폭의 기술적 반등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상황이 해결된 게 아니며, 문제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면서 "변동성이 좀 더 낮아져야 금융시장도 정말 안정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는 이날 5만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또 '자택대기'를 명령한 주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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