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유로존, 재정 확대정책 논의해야

"EU 저금리에 통화정책 한계
ECB 이중금리 정책 등 쓸 만
경기침체 돌입 전에 조치해야"

배리 아이컨그린 < 美 UC버클리 교수 >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은 곤경에 처해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연이은 통화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목표치보다 낮다. 금리가 제로(0)에 가깝다보니 전통적인 통화정책에 양적완화 조치까지 내놔도 별다른 효과를 못 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정책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자자들은 국채를 마이너스 금리로 매입하고 있다. 유럽 정부들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간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환경에서도 개인 소비가 늘지 않아 성장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공공 지출을 늘리는 게 알맞은 처방일 것이다.문제는 독일을 필두로 여러 유로존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이 재정 확대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자국민이 빚을 지도록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유로존 여러 국가가 적자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이유다.

유로존 재정 확대를 놓고 교착상태가 계속되면서 일각에선 ECB가 우회적 재정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CB가 이중금리 정책을 펼치는 게 그런 예다. ECB가 시중은행으로부터 플러스 금리로 예금을 받고,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식이다. 이 경우 시중은행은 수익성이 보장되므로 민간에 대출을 적극 내주려 할 것이다. ECB는 장기대출프로그램인 ‘TLTRO-II’를 통해 이 같은 정책을 소규모로 실험해본 적이 있다.

이 같은 방법에 대한 반론도 있다. ECB가 자산보다 부채에 이자를 더 쳐주는 정책을 확대할 경우 재정에 손실을 입고 자본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중앙은행은 이런 상태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직접 돈을 찍어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빚 감당을 하자고 계속 화폐를 발행하면 통화정책의 신뢰성이 확 떨어진다. 이 경우 ECB의 주주 격인 유럽 각국 정부는 ECB 자본 구성을 재편하자고 요구할 것이다. 유로존과 각국에 상당한 부담이다.독일 등이 ECB의 이중금리 정책 도입을 놓고 규정 위반 가능성이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사실은 이 같은 위험을 걱정해서다. 이들은 유럽연합(EU) 조약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엄격히 분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그리 높지 않다. EU 조약과 조항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충분히 재해석될 수 있다. 유로존 20년 역사에서 조항을 재해석한 전례도 여러 번 있다.

ECB가 유럽투자은행(EIB)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안이다. EIB는 납입자본과 적립금을 총 700억유로가량 보유하고 있다. 필요 시 납입을 요청할 수 있는 요구불자본금 규모는 2200억유로 수준이다. EIB는 지속 가능한 투자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게 일이다. 유로존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는 데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EIB 대출 규모는 주주들이 청약한 자본의 250% 수준으로 제한이 걸려 있는 게 문제다. 현 경제 상황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주려면 이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조치는 상당한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ECB가 준(準)재정 조치를 내놓으면 독일 등에선 매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다. 독일 정부는 자국 여론을 반영해 유로존에서 각종 방법으로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 이는 유로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그러나 지금 유럽은 이런 논쟁에 돌입해야 할 때다. 유로존 경제가 본격 침체하기 시작하면 ECB는 지금보다도 손이 묶일 것이다. 금리는 이미 낮은 상태라 ECB가 기존 방식대로 경기 침체 상쇄 조치를 할 여력이 별로 없다. 앞으로 큰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불편한 논쟁에 나서야 한다.

ⓒ Project Syndicate

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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