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러, 美 보란 듯 대북제재 완화 요구…단호한 美 "시기상조"

中·러, 안보리에 결의안 제출

남북 철도·도로 협력사업 등
제재 대상에서 제외 요구
美 패권 확산에 '견제구' 날린 듯
중국과 러시아가 1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일부 대북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이른바 북한이 설정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미·북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보란듯이 우방인 북한 편들기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군사 패권과 동북아시아 지역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중·러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는 시기상조”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한국 정부는 “입장을 정리 중”이라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 김정은, 김정일 사망 8주기 참배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8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이 행사엔 군 고위 간부도 대거 동행해 군부 위상 강화를 예고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재룡 내각 총리, 최용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정은,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연합뉴스
미국에 반기 든 중·러중국과 러시아는 이날 기존 대북제재 가운데 일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에 전달했다. 중·러가 마련한 결의안에는 △북한 해산물·섬유 수출금지 해제 △해외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 폐지 △남북 철도·도로 협력사업 제재 대상 제외 등이 담겼다. 한마디로 수년간 막혀 있던 북한의 돈줄을 풀어주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다. 중·러의 이 같은 요구는 북한의 외화벌이 통로를 봉쇄해 핵개발을 막겠다는 안보리의 기존 공감대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거론하면서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완화·해제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이런 요구를 결의안 제출 등 행동으로 옮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11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 요청으로 소집된 안보리에서도 중·러는 “대북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미국에 반기를 들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ICBM 발사 등 연말 도발을 암시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보다 미·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미국의 군사 움직임을 막으려는 견제구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美 “제재 완화 고려할 때 아냐”

미 국무부는 이날 중·러의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제출에 대해 “지금은 대북제재 완화를 고려할 때가 아니다”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중·러는 이번 결의안 채택을 위해 안보리 표결에 상정하는 방안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제출 등 행동에 나서면서 향후 미국 중심의 강경 일변도 대북제재 기조 유지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큰 틀에서 미국 패권에 대응하기 위한 중·러 간 전략적 협력 관계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며 “중·러가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완화에 관한 목소리를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맹인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지만 남북한 관계 개선을 위해선 제재에 막힌 각종 경제협력 사업의 물꼬가 트여야 하기 때문이다. 중·러가 제안한 철도·도로 연결 외에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우선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외교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공식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정호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dolph@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