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경기 바닥론'…"L자형 장기침체에 빠질 우려"

10월 생산·투자·소비 동반 감소

제조업 부진의 늪 못 벗어나
가동률 떨어지고 재고 증가
지난달 생산·투자·소비가 일제히 감소함에 따라 ‘경기가 바닥을 찍고 곧 반등할 것’이란 정부와 청와대의 기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언제 바닥을 찍을지 예상하기 힘들고 L자형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10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달 생산과 소비, 투자는 8개월 만에 전달 대비 동반 감소했다. 생산(전산업생산 9월 -0.4%, 10월 -0.4%)과 소비(소매판매 9월 -2.3%, 10월 -0.5%)는 두 달째 감소했고 설비투자(-0.8%)는 5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4로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작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11개월 연속 하락하다 4월 보합, 5월 0.3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6월과 7월에는 각각 0.1포인트 하락했다. 8월 다시 0.2포인트 오르고 9월 보합세를 기록한 뒤 지난달 다시 고꾸라졌다. 바닥을 다지려 하면 다시 꺼지는 현상이 반복된 것이다.

주력 산업인 제조업이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 경기 반등을 막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제조업 생산은 전월 대비 1.5%, 전년 동기 대비로는 2.5% 감소했다. 1년 전에 비해 반도체 생산이 11.7% 늘었지만 전자부품(-14.4%) 자동차(-6.6%) 등 다른 주력 산업은 감소했다. 제조업 가동률지수는 전월 대비 3.1%, 전년 동월 대비로는 1.5% 감소했다. 제조업 재고는 전월 대비 0.2%, 전년 동기 대비로는 6.0% 증가했다.다만 앞으로의 경기상황을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7로 전월보다 0.2포인트 올랐다. 기준선 100에는 못 미치지만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상승했다. 이는 28개월 만에 처음이다.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동행지수는 떨어지고 있어 경기가 바닥을 쳤는지는 지금 상태에서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이달 들어 ‘경기 바닥론’으로 해석될 만한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다. 경기 부진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어려운 상황이 끝나고 반등할 일만 남았다”는 희망 섞인 신호를 시장에 던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달 1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장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기다리면 올라간다”며 “수출은 10월을 바닥으로 보고 이후 감소 폭을 줄이다 내년 초 플러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15일 발간한 ‘11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올해 4월호부터 사용했던 ‘경기 부진’이란 표현을 8개월 만에 뺐다.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외에 경기 회복에 힘을 실어줄 만한 산업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라며 “최근 상황은 회복이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고 L자형 장기 침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석길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기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지만 경기 바닥론을 제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국내 경기가 바닥을 찍는 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가까운 시일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서민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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