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아버지 김정일까지 깎아내려…'남북관계 뒤집겠다' 신호

김정일 정책 공개비판 이례적
'美와 협상 우위 서겠다' 신호?
< 南시설 철거 지시하는 김정은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금강산 관광지구를 찾아 현지 지도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하며 “너절한” “피해지역 가설막이나 격리병동 같은”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 김정은이 이 같은 과격 발언을 한 가장 큰 이유로는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금강산 관광 재개가 지금까지 이행되지 못한 데 대한 불만 표출이 첫손에 꼽힌다. 금강산을 매개로 남북 관계, 더 나아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선친 ‘김정일 대북정책’까지 싸잡아 비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가 23일 소개한 김정은 발언 중 제일 눈에 띄는 구절은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이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됐다”며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심각히 비판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선임자는 곧 그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김정일이 현대그룹과 함께 추진한 대표적인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다. 아울러 금강산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장으로 활용되며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아온 장소다. 최고지도자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선대의 유훈을 결코 어기지 않는 게 불문율인 북한에서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정책을 공개 비판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이 선대 유훈인 남북협력사업의 상징을 일방적으로 철회하는 건 남북정상선언 정신에 위배되고, 선대의 협력사업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전형적인 북한 지도자 임무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남북 교류 전면 중단 협박

김정은은 금강산호텔,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등 남측 시설에 대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혹평했다. 우리 정부와 현대아산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밝혔지만 이행되지 못한 책임을 모조리 우리 정부에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김정은은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우리 정부를 향해 남북 교류를 모두 끊어버릴 수도 있다고 드러내놓고 압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연 ‘한반도비핵화대책특위’ 간담회에서 “남측에 대한 실망과 불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는데, 금강산도 그 일환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북·미, 남북관계에 연말 이전 한두 번의 중대한 계기가 올 것이고 그 계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긍정적 여지는 남겼다.

미·북 협상에 ‘금강산 카드’ 활용하나

김정은의 금강산 방문 수행단에 장금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포함된 점도 주목된다. 장금철은 대남, 최선희는 대미 정책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장금철을 대동한 것은 앞으로 금강산 관광지구 재건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협의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의 동행은 향후 금강산 관광을 미·북 실무협상에서 대북제재 완화와 관련한 카드로 쓰고자 하는 의중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인 금강산 관광객 증가와 금강산 관련 북·중 투자 협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 국가관광총국은 지난해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20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중국인이 90%에 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후 북한 대표단이 중국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원산과 금강산 관광지구에 대한 투자 유치전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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