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브렉시트 위해 조기총선 ‘승부수’ 던진 존슨 英 총리

노동당 등 야당은 내년 1월까지 3개월 연기 추진
10월14일 조기 총선 실시 가능성 높아져
불확실성에 급락한 파운드화…제조업 지수도 7년래 최저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강행 방침에 반발한 야당과 일부 보수당 의원들이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말까지 3개월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야당이 이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면 다음달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파운드화 가치도 폭락했다.

○야당, 브렉시트 기한 3개월 연기 추진존슨 총리는 2일(현지시간) 오후 예정에 없던 내각회의를 소집한 뒤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예정된 10월31일까지 브렉시트를 단행할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에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야당과 일부 보수당 의원들이 노딜 브렉시트를 막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영국 하원은 여름 휴회를 끝내고 3일(현지시간) 재개된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 등 야당과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보수당 의원 20여명은 이르면 이날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까지 3개월 연장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법안은 영국 정부가 다음달 19일까지 EU와 합의된 새로운 브렉시트 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거나 노딜 브렉시트가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EU에 내년 1월31일까지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날짜를 다음달 19일로 못박은 것은 EU 정상회담이 다음달 17~18일 개최되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야당의 브렉시트 연기 법안이 영국 정부 협상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존슨 총리는 당초 다음달 17~18일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영국에 최대한 유리한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을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만약 브렉시트 연기 법안이 (하원에서) 처리된다면 영국의 다리를 잘라내고 더이상의 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법 법안은 또 다른 의미없는 브렉시트 연기를 위한 것”이라며 “의원들이 이에 투표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조기총선 강행한 존슨의 노림수

존슨 총리는 이날 조기 총선 실시 여부에 대해 “나도 여러분도 선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BBC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 언론들은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존슨 총리가 다음달 14일에 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을 하원에 제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여명의 보수당 의원들의 ‘반란표’까지 가세한 상황에서 하원에서 브렉시트 추가 연기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조기 총선이 실시되려면 총 650석인 영국 하원에서 의장단을 비롯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11명을 제외한 639명 기준으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다만 코빈 노동당 대표도 총선 실시에 찬성하고 있어 통과는 무난할 것이라는 게 영국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하원을 통과하면 총리가 총선 날짜를 여왕에게 통보하게 된다.존슨 총리는 총선을 실시하더라도 집권당인 보수당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해 정부를 계속 유지하게 되면 브렉시트는 사실상 존슨 총리의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다. 존슨의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인 코빈 노동당 대표에 대한 중도층의 거부감도 이런 관측에 힘이 실리는 또 다른 이유다. 급진 좌파성향의 코빈 대표는 소득세, 법인세 등 세금 인상 및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은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코빈 대표가 총리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추락하는 영국 자존심 ‘파운드’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외환시장에서 파운드·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1% 이상 떨어진 1.20달러를 기록했다. 영국 정부가 EU 탈퇴 협상을 공식 개시한 2017년 3월 중순 이후 2년 6개월 만에 사실상 가장 낮은 수치다. 달러화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사임을 발표한 지난 5월 이후 7% 이상 급락했다. 파운드·유로 환율도 1.10 유로 밑으로 떨어졌다.파운드화는 흔히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영국은 1999년 유로화 출범했을 때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합류하지 않았다. 역사가 오래된 파운드화는 신생 화폐인 유로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화폐라는 이유에서였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실시 직전해인 2015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외환시장에서 1파운드는 1.5달러 이상에서 거래됐다. 그러나 2016년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파운드 가치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파운드화 가치가 추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에 더해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파운드·달러 환율이 1달러당 1파운드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이날 발표된 지난달 영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4로 집계됐다. 예상치인 48.4를 밑도는 수치로, 2012년 7월 이후 7년1개월만에 최저치다. 영국의 제조업 PMI는 경기 확장과 위축을 가르는 기준선인 50을 4개월째 밑돌고 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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