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대 ISD 엘리엇, '국정농단' 대법 판결에 몰래 웃는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이에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두고 ‘묵시적 부정청탁’이 있었다고 판결하면서 한국 정부에 1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메이슨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30일 국제중재업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간 뇌물을 주고 받는 청탁 관계로 인정했기 때문에 엘리엇·메이슨은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ISD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고 평가했다.지난해 엘리엇·메이슨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8억7000만달러(약 1조5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를 제기했다. 이들은 중재재판부에 149쪽짜리 소장을 내고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부당한 간섭 때문에 양사 간 합병비율이 적절하지 않았는 데도 찬성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엘리엇·메이슨이 한국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기위해선 ‘청와대와 국민연금’ 그리고 ‘청와대와 삼성’ 사이의 두가지 부정 청탁의 고리를 입증해야한다.

첫번째 고리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은 직권남용 혐의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합병 찬성을 지시해 연금에 손해를 입힌 배임 혐의 사건이다. 이들에 대한 2심 재판부는 2017년 11월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며 유죄를 입증했다.두번째 고리에서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를 목적으로 한 청탁의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엘리엇·메이슨에게 불리한 정황이다.

하지만 지난 29일 대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이를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했다. 엘리엇·메이슨은 ‘경영권 승계’와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증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엘리엇·메이슨에 유리한 정황이지만 아직 갈길은 멀다. 이번 판결이 확정 판결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심으로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나 부정한 청탁 여부가 다시 검토될 가능성도 있다.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리만 따지는 대법원과 달리 서울고법은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사실심’”이라고 말했다. 연내 나올 것으로 보이는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 최종 판결에서 예상밖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한국 정부(법무부)와 엘리엇·메이슨은 중재재판부를 상대로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며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메이슨의 실질적 투자가 미국 밖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보호받아야 할 투자자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판정에 대한 불복이 불가능한 단심제인 ISD는 소송 절차에 3년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최종 판결은 이르면 2021년 나올 전망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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