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신규 조달처 찾자"…삼성전자·SK하이닉스 '동분서주'

TF 만들어 '日 보복' 대응
국내·美·中·대만社 접촉
불화수소 테스트 나서
< 반도체 현장 찾은 이해찬 대표·이재명 지사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네 번째)와 이재명 경기지사(두 번째)가 12일 경기 화성시 동진쎄미켐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방진복을 입고 반도체 관련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조달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본이 전격적으로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사내에 태스크포스(TF)까지 조직해 소재 확보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국내 업체뿐 아니라 미국 중국 대만의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생산 업체들과도 활발히 접촉하는 중이다. 러시아가 외교채널을 통해 불화수소 공급을 제안했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긍정론과 함께 “품질 테스트와 생산라인 안정화 기간 등을 감안할 때 공급처 변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이 동시에 나온다.
TF 조직해 수출 규제 대응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부에 TF를 조직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 두 회사는 국내 H사와 함께 일본산이 아닌 불화수소를 생산라인에 투입하기 위해 테스트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공정에서 회로의 모양대로 깎아내는 ‘식각’과 식각 후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정’ 공정에 쓰인다. 반도체 미세 공정의 핵심 소재여서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순도 99.999% 이상의 제품을 스텔라 등 일본 업체에서 주로 조달했다. H사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정제능력이 뛰어난 외국 업체 한 곳과 손잡고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중국 대만 업체들과도 접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업체로부터 불화수소를 공급받아 현지 공장에서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업체를 찾아 불화수소 조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는 대만에 생산기지를 둔 일본 업체뿐 아니라 현지 업체들과의 협상도 진행 중이다.최근엔 러시아 정부가 외교채널을 통해 불화수소 공급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업계가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러시아는 자국 업체의 불화수소가 경쟁력 면에서 일본산과 동등하거나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화수소 확보가 가장 시급”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3종 가운데 반도체 업체들에 필수적인 제품이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감광액)다. 업체들이 불화수소 조달에 좀 더 매달리는 것은 D램, 낸드플래시, 시스템반도체 등 거의 모든 반도체 공정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토레지스트도 D램이나 낸드플래시 제조에 쓰이지만 일본 정부는 현재 EUV(극자외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정에 필요한 제품만 수출 규제 목록에 올려놨다. 골드만삭스가 최근 발간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업종 영향’ 보고서에서 불화수소 조달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큰 우려를 나타낸 이유다.일본 정부가 한국이 불화수소를 북한에 밀수출하려 했다는 루머를 흘리는 것도 이 제품 수출을 계속 규제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달처 다변화 가능할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체적으로 반도체 핵심 소재 조달처 다변화 노력에 나선 점에 대해 학계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는 게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를 조달처 다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국내 업체들이 긴 호흡을 갖고 기술개발 등에 힘써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일각에서는 반도체 공정에 투입할 핵심 소재를 바꾸려면 테스트 기간 2개월을 포함해 생산라인 안정화에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들어 ‘공급처 다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러시아의 불화수소 공급 제안에 대해 “러시아산 제품을 써본 적이 없다”며 “한국 기업의 요구 수준을 맞출 수 있는 제품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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