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기업을 이렇게까지 골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

무리한 정책 떠안은 공공기관 이익 2년 새 93% 급감
미래로 부담 전가하는 '도덕적 해이' 차단할 장치 시급
문재인 정부 출범 2년도 안 돼 공기업 경영 건전성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 339곳의 지난해 합계 순이익이 1조1000억원으로, 한 해 전(7조2000억원)보다 85% 급감했다. 2년 전인 2016년(15조4000억원) 대비 감소율은 93%에 달한다.

‘탈원전’ ‘문재인 케어’ 등 무리한 정책의 후폭풍이 공기업들에 고스란히 전가된 결과다. 대표적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이익이 1년 새 2조6000억원 줄어든 것을 비롯해 탈원전 관련 에너지 공기업들의 이익감소액이 4조2000억원에 달했다. 우량 공기업으로 꼽혀온 한국동서발전 한국중부발전 지역난방공사 등은 이자보상배율이 1.0 아래로 추락하며 ‘문제기업’으로 전락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갚지 못해 외부 지원 없이는 존속 불가능한 좀비기업이 될 판이다. 건강보험 적용 진료의 범위를 대폭 늘린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건강보험공단의 이익도 한 해 전보다 4조2638억원이나 줄었다.앞으로도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 우려를 증폭시킨다. 정부는 최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현재 7%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에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단가가 비싼 재생에너지 확대는 에너지 공기업의 수지압박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케어’로 인한 건강보험 지출액도 올해부터 5년간 41조5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적자가 쌓이는데도 공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는커녕 방만경영으로 치닫고 있다. 339개 공기업의 지난 한 해 신규채용은 3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49.8% 급증했다. 악화하는 경영여건을 무시하고 정부의 채용 확대 방침에 무조건 장단을 맞춘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공기업 실적 악화는 직·간접적인 국민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정부에 배당을 할 수 없게 되고, 적시 투자를 가로막아 공공서비스 질 저하가 예상된다. 공공요금의 잇따른 인상도 불가피하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고, 지난해 2265억원의 역대 최대 손실을 낸 지역난방공사도 아파트 난방비 7월 인상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채권 발행이나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한다면 결국 국민이 돌려막고 미래세대로 부담을 떠넘기는 꼴이다.공기업 부실은 국가 재정건전성 차원에서도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는 ‘국가부채비율이 아직 튼튼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정부부채(D2)만 볼 때의 얘기다. 사실상 정부가 보증해야 할 공기업 부채 503조8000억원(2018년 말 기준)을 감안한 공공부채(D3) 기준으로는 이미 위험수위다.

인기영합 정책으로 부실을 부채질하는 정부의 각성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가 도입한 성과연봉제를 호봉제로 되돌린 데 이어, 지난달 직무급제 도입도 강제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의 공기업 개혁의지마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 책무가 막중하다. 재무건전성 유지를 강제화하는 등의 획기적인 조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