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진보의 도덕적 고지는 무너졌다

착한 척, 정의로운 척, 잘난 척
국민 기만한 진보의 거짓과 위선
양심의 소리 들어야 도덕성 회복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도덕이나 이타심은 진화의 산물이다. 만약 도덕성이 개인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이라면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생존경쟁에서 도태됐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양심의 가책’이 인간을 안전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왔다. 양심의 가책은 육체의 통증과 비슷한 것이다. 일종의 경고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사고나 질병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듯이 도덕심이 약한 사람들은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든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번에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조 수석을 바꾼다고 문재인 정부의 인선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실제로 진보와 정의를 앞세운 인사들의 면면은 그렇게 도덕적이지 않았다. 과거 보수정권의 고위 공직자들은 병역기피, 원정출산, 직권 남용, 부동산 투기와 탈세 등으로 질타를 받았지만 이 정부 사람들은 여기에 거짓말과 위선, 성추문을 보탰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초등학생들이 알게 됐을 정도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반대 진영에 날선 비수를 날렸던 김경수 김기식 김의겸 손혜원 안희정 이유정 이재명 등은 잇따라 낙마를 하거나 명예에 금이 갔다.

그들이 정의라는 도덕적 고지를 점령한 것은 본연의 윤리적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상대적이고 반사적인 것이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보수정부는 눈부신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 독재와 부정으로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보수의 이념적 가치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 내부 분열로 자멸하고 말았다.

진보진영은 이런 보수를 공격하면서 손쉽게 도덕적 우위를 확보했다. 스스로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진 ‘강남좌파’들이 그 깃발에 몰려들었다.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이 어떠한지는 상관하지 않았다.문 대통령은 특권층의 결탁과 공생을 타파하겠다고 하지만, 이젠 진보진영도 이들 단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공공기관에 일제히 떨어진 수백 개의 낙하산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편의 허물은 감싸고 상대는 잔혹하게 밟아버리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결탁과 공생 아닌가. 국민들은 더 이상 ‘착한 코스프레’에 속지 않는다. ‘내 자식, 내 재산, 내 자리’ 챙기며 살았으면서도 ‘착한 척, 정의로운 척, 잘난 척’하며 떠들어온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의 한 계열사 사장은 남 몰래 포르쉐를 몰고 다녔다. 그는 가끔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30여 년의 월급쟁이 생활을 거쳐 사장까지 올랐으니 손가락질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사코 숨기려 들었다. “여기저기에 너무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그게 정상이다. 나는 김의겸의 상가 매입이 타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50대 가장으로서 결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는 진보를 대변하는 가장 높은 고지에 오르지 말았어야 했다.진보진영은 무단으로 점령한 도덕적 고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똑바로 보인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1만원도 못 주면 어떡하느냐”(유시민, 김제동)는 주장은 정의를 가장한 악의적 선동이자 영세 사업자들을 향한 모욕이다. “니들 아버지는 뭐 했느냐”(손혜원)는 욕설은 온갖 무리를 해가며 부친을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린 공직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양심의 통각이 사라지면 개인은 물론 국가 전체가 위험해진다. 한국은 경제적 실패가 아니라 도덕성 추락으로 먼저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미 살아버린 인생이야 어쩔 수 없지만, 옷깃은 다시 여며야 하지 않겠는가.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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