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매칭 플랫폼 '탤런트뱅크'의 실험…쏟아지는 대기업 출신 프리랜서를 中企와 연결

시니어 전문가 활용법 (1)

휴넷, 작년 7월 서비스 개시…시니어 전문가 600명 등록
中企, 정규직 고용 부담없이 신사업 해외시장 진출 등 자문
탤런트뱅크 홈페이지 전문가 소개 화면.
19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일자리는 크게 늘었다.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 발전으로 공공기관 수요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 해 80만 명 이상이 태어난 1960년대생들은 그 일자리를 차지했다. 경험과 지식을 온몸으로 체득하며 성장의 과실을 맛봤다. 이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늘어난 평균수명은 이들을 장기 실업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은퇴하는 임원과 기술자의 노하우를 중소기업의 인재난 해소에 활용하자는 취지다. 정부도 시니어인턴 사업 등을 통해 이 대열에 가세했다. 대기업 임원 출신 은퇴자와 중소기업을 연결시켜 주는 교육기업 휴넷이 대표적이다. 휴넷 사례를 통해 은퇴한 시니어의 활용 가능성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채용=정규직’ 공식을 깨다

대기업을 다니다 1999년 창업한 조영탁 휴넷 대표는 오래전부터 의문을 갖고 있었다. “매년 대기업에서 1000명이 넘는 임원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이들을 중소기업에서 활용하지 못할까.” 20년 가까이 중소기업 교육에 전념하며 그 의문을 풀었다. ‘채용=정직원’이라는 공식이었다. 이를 깨고 프로젝트별로 협업하는 방식을 구상했다. 예를 들어 전문 마케터를 고용할 형편이 안 되는 중소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하며 두 달간만 시니어를 고용하는 식이었다. 휴넷은 작년 7월 ‘탤런트뱅크’라는 이름으로 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범 후 시니어 퇴직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까지 탤런트뱅크에 등록한 전문가는 600명에 달한다. 7개월 만에 올린 성과다.

탤런트뱅크 홈페이지 전문가 소개 화면.
조 대표는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30대 직원을 중심으로 사내벤처를 설립했다. “탤런트뱅크에서 일정한 성과가 나면 별도 회사로 독립한다”는 약속도 했다. 이 젊은 팀도 탤런트뱅크 서비스를 활용한다. 면접을 통해 전문가를 선발하고, 적합한 중소기업을 연결해주는 2명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탤런트뱅크에 등록된 전문가 중에서 영입했다. 국내 대기업 고문으로 재직 중인 한 프로젝트 매니저는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수십 년간 맡았다”며 “중소기업에서 요청하는 프로젝트와 이를 수행할 전문가를 알맞게 연결하는 게 핵심 업무”라고 말했다.

긱이코노미의 확산

케이블과 건설 자재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A사는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3년간 노력했지만 계약다운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가격 경쟁력과 품질은 확보했지만 해외시장에서 영업과 마케팅하는 방법을 몰랐다. A사는 탤런트뱅크를 통해 삼성과 LG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 3명과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고정급 없이 출장비와 성공보수를 받기로 하고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일하고 있다. 탤런트뱅크는 지금까지 이런 프로젝트 계약을 150건 정도 성사시켰다.전문가와 중소기업이 맺는 계약 형태는 다양하다. 한 달 400만원 등 고정급도 있고, A사 같은 성공보수 형태도 있다. 포스코 출신 생산기술자는 월 8회 조언을 주는 조건으로 500만원을 받는다. 탤런트뱅크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고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탤런트뱅크와 같은 플랫폼은 긱이코노미(gig economy)로 불린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유연하고 전문적인 고용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긱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일회성 계약으로 밴드나 연주자들을 고용하던 방식에서 유래한 단어다.

유럽 고용시장에서 긱이코노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중반대로 추산된다. 포브스는 2020년 미국 경제에서 긱이코노미가 직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3%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요즘 대기업에서 퇴직하는 임원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과 글로벌화를 이끈 주역”이라며 “이들은 중견·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앞으로 탤런트뱅크 같은 플랫폼이 ‘인력 미스매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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