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 시작도 하기 전에…김정은이 챙긴 네가지 승리

현장에서

박동휘 정치부 기자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초전이 뜨겁다. 두 나라 간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대체로 ‘북한의 판정승’이란 평가가 나온다. ‘비핵화 리스트’는 제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남북경협 재개 등 ‘선물 목록’을 잔뜩 받아놓은 모양새다.

북한은 협상 상대방의 패를 거의 다 들여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제공할 상응조치가 무엇인지를 이미 훑어봤다.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등 체제안전 보장부터 그토록 고대하던 제재완화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가능성이 커졌다. 거꾸로 북한의 패는 외부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 관영매체는 그들의 ‘존엄’이 하노이에 갈 예정이라는 것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노동신문이 지난 20일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라고 한 게 전부다.북한은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어떤 단계를 거칠지를 두고 ‘계산된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평양에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실험대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가 이뤄지면 영변핵시설 폐기도 검증받겠다’고 ‘구두 약속’을 한 게 전부다. 영변핵시설 폐기를 단계별로 할지, 한꺼번에 할지를 비롯해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할지 등이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의 동시행동 원칙을 수용한 것만 해도 김정은의 승리”라고 지적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이 형성한 촘촘한 제재 둑에 구멍을 낼 ‘희망’이 생겼다는 점 역시 북한이 얻은 결실 중 하나다. 그것도 ‘타도지계(他刀之計)’의 전법을 통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19번째 전화통화에서 “남북경협의 부담을 떠안겠다”며 제재완화를 대북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3차 정상회담까지 예고했다. 김정은으로선 적어도 시간에 쫓길 일은 없어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하노이행이 비단 핵협상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로 악화됐던 베트남과의 관계를 복원한 것만 해도 김정은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초전의 패배를 본게임에서 어떻게 만회할지 지켜볼 일이다.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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