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언 vs 밀리언…막판 '단위싸움' 돌입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방위비 갈등, 한·미동맹 흔드나

"10억달러 이하는 절대 불가" 미국, 한국 측에 최후통첩
"1조원을 넘길 수는 없다" 韓, '심리적 마지노선' 고수
"주한미군 감축 카드 꺼내면 1조원 버티기 어려울 것"
북핵공조에 악영향 줄까 우려 "명분 싸움말고 조속 타결해야"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과 관련해 진통이 거듭되고 있다. 양국이 국회와 언론 등을 동원해 막판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한국 측 부담금으로 총액 10억달러(약 1조1305억원·1billon) 이하는 불가능하다고 최후통첩을 했고, 한국은 “절대 1조원을 넘길 수 없다”며 9999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말로 예상되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한·미 동맹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진통 겪는 방위비 분담금 조정23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말 외교 채널을 통해 ‘최상부 지침’을 전제로 ‘총액 12억달러, 협정 유효기간 1년’을 제시했다. 어떤 경우에도 10억달러 미만은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제안은 돌발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협상단의 9차 협의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10차 협의에서 미국은 ‘12억5000만달러(약 1조4131억원)에 1년 기간’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은 결렬됐다.

우리 정부는 1조원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협상에 임했다고 한다. 지난해 분담금인 9602억원(약 8억4800만달러)에서 조금 올려 9999억원을 최종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년 대비 4.1% 증액한 금액이다. 지금껏 SMA는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상승률을 정했다. 미국이 애초 요구한 7%대 상승률엔 못 미치지만 물가상승률보다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셈이다.

총액뿐만 아니라 협정 유효기간에서도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협상 초기부터 ‘3~5년’을 주장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1년 단위 협상을 체결하면 올해 곧바로 다시 협상을 시작해야 해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협정 유효기간을 1년으로 변경하면서 재협상을 노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美 ‘주한미군 감축’ 카드로 인상 압박하나

양국 정부가 팽팽히 맞서면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안보를 경제적 관점으로 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대가로 주한미군 감축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우리 정부가 ‘1조원 이상 불가’ 입장을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2월 말 미·북 정상회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까지 직접 거론하고 나온다면 우리 측이 미국의 요구를 계속 거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한·미는 고위급 등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전화상으로 협의했다. 양국은 정상급 차원에서의 논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전에 조속히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매듭지어 한·미 공조에 악영향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비준도 진통 예고

한·미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방위비 분담금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인상되면 국회 비준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는 비준을 앞두고 여야 지도부에 ‘SOS’를 요청하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5일 국회를 방문해 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를 만나 방위비 협상 상황을 설명하며 협조를 구했다. 강경화 장관도 21일 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직접 여야 지도부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설명하면서 지원을 미리 당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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