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소수의견] "4차산업 걸림돌 없는 중국이 결국 이긴다"

'중국이 이긴다' 저자 정유신 서강대 교수 인터뷰
기존 시스템에 최적화된 미국, 저항 강할 수밖에
"시장확대·ABCD 기술혁신 中 '디지털 G1' 될 것"
“중국이 이긴다.” 다소 도발적인 이 주장의 전모를 파악하려면 몇 가지 질문이 추가돼야 한다. 누구를? 미국을. 언제? 앞으로. 어떻게?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구조적 변화’에서 앞질러서.

최근 출간된 〈중국이 이긴다〉 저자 정유신 서강대 교수(사진)는 한경닷컴과 만나 “모든 비즈니스모델에 영향을 주는 혁명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며 “지금은 미국에 뒤져 있지만 디지털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 방향과 속도에서 풍부한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중국이 결국엔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정 교수는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SC제일은행 부행장, SC증권 대표, 한국벤처투자 대표 등을 지낸 금융전문가다. 2014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해 기술경영대학원장을 맡고 있으며 2015년부터는 금융위원회 산하 핀테크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해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과 중국 런민대 재정금융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아 양국 사정에 밝다.

그는 중국 급성장의 핵심요인으로 ‘시장 확대’와 ‘기술 혁신’을 꼽았다.

기존 중국 시장은 31개의 성(省)으로 분절된 시장이었다. 법과 문화가 달랐고 언어마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은 이 시장을 하나로 묶어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유통혁명을 통해서다. 시공간 제약 없는 디지털 플랫폼이 결합되자 중국은 비로소 ‘14억 통합시장’이 되었다. 규모의 경제는 중국을 혁신이 살아 숨쉬는 시장으로 만들었다. 단순 계산해도 똑같은 아이템으로 5000만 한국 시장의 28배 수익을 낼 수 있다. 중국 청년들이 앞다퉈 창업에 뛰어드는 이유다. 수치가 입증한다. 중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은 미국보다 빠르게 늘고 있으며 벤처창업이 한국의 150배에 달한다.시장 확대가 필요조건이라면 기술 혁신은 충분조건이다. 중국의 ‘제조 2025’ 정책이 대표적. 뜯어보면 4차 산업혁명의 근간 미래기술 혁신이 골자라고 짚었다. 정 교수는 “정책을 인수분해하면 ‘ABCD(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드론) 진흥이 나타난다”고 했다. 최근 4~5년간 논문·특허·투자·인력 면에서 모두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이 대중 무역전쟁에서 이들 분야에 관세 폭탄을 집중한 것 역시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봤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압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은 플라스틱 (신용)카드 사회인 반면 중국은 스마트폰 사회라 빅데이터의 질적 격차가 크다. 중국은 카드 결제로 얻는 숫자뿐 아니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텍스트, 카메라 동영상 데이터베이스까지 얻을 수 있다”면서 “데이터 종류 3배, 인구 5배, 공산당 통제로 인한 개인정보 규제 완화효과 1.3배까지 감안하면 중국의 빅데이터가 미국보다 20배나 강하다. 이 추세로 3~5년 지나면 빅데이터와 AI에서 미국을 앞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그렇다 해도 패권국 미국이 종국에는 신흥국 중국에 진다는 시나리오가 과연 현실화될까. 고개를 갸웃하자 정 교수는 ‘자충수 이론’으로 부연했다.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 개념만으로는 좀 부족해보여요. 선진국의 자충수로 풀이하면 근본 원인이 더 잘 보입니다. 선진국이 왜 앞서가지 못할까요? 기존 기술에 익숙해서 그렇습니다. 선진국은 ‘현재’의 시스템에 최적화된 나라예요. 법·제도, 인프라가 거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미래’에 적합한 새로운 환경을 구축하려면 복잡한 이해상충 조정, 법 제·개정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요. 너무 잘 갖춰진 게 도리어 걸림돌이죠. 신흥국은 그 과정을 건너뜁니다.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에 중국이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가 이처럼 미래 중국의 승리를 예고하는 근거는 기술이다. 경제구조 가장 밑단에 있는 기술이 진짜 혁명의 원천이라 역설했다. △개별 상품이나 서비스를 넘어 산업 전체에 막강한 파급력을 갖는 최종 심급의 인프라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이 될 것이며 △4차산업 성패를 좌우할 ABCD 등 디지털 경제 플랫폼에서 중국이 최고가 되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경제구조의 패러다임 지각변동과 함께 자연히 중국이 유일 강대국(G1)으로 올라설 것이란 설명이다.토대는 마련됐다. 전세계 인구의 70%가 휴대폰을 보유한 ‘손 안의 시장’에서 중국이 앞서가기 때문이다. 길거리와 재래시장 상인들까지 모바일 QR코드를 스캔해 물건을 팔고 있다. 이미 O2O(Online to Offline)와 공유경제 시장 규모에선 미국을 넘어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제품의 품질이 곧 경쟁력이었지만 모바일 플랫폼 시대엔 결제와 배송이 추가된다. 얼마나 싸고 편리하며 빠르냐가 관건인데, 중국은 바로 여기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의 ‘배트(BAT)맨’이 그 주역이다.

정 교수는 “모바일 플랫폼 혁명으로 시장이 손 안으로 들어오면서 전세계가 동시에 가까운 광속의 시장이 됐다. 중국은 이미 여기에 올라탔다”면서 “기술적으로도 21세기의 원유가 빅데이터인데 원유는 고갈되지만 빅데이터는 쓸수록 더 강해진다. 빅데이터에서 중국이 훨씬 강하다는 건 변수가 아닌 상수”라고 짚었다. “중국은 디지털 G1이 곧 G1이 되는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 전력을 다한다”고도 했다.

반론도 제기된다. 글로벌 경기둔화에다 버블 붕괴 직전의 일본을 웃도는 과다한 기업 부채 등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가 적지 않은 탓이다. 이들 약한 고리를 미국이 집중적으로 두드리면 중국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 교수는 대세엔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구조적 변화에 비하면 영향이 적은 ‘주기적 변화’라는 것이다. 그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중국의 기업 부채가 많은 건 사실이고 독일·일본처럼 2위 국가 경제규모가 미국의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가차 없이 공격하는 이른바 ‘3분의 2룰’도 있지만 중국은 극복할 여지가 있다”며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중국은 내수시장이 크고 아직도 1인당 소득이나 도시화 비율이 낮다. 그만큼 성장 여력이 남아있어 전선(戰線)을 자신들이 유리한 ‘구조적 변화’의 장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패권이 기축통화(달러)나 공용어(영어) 등 경제권력을 넘어선 복합적 산물이란 주장에 대해서도 “중장기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에겐 없는 이런 요소들 때문에 미국의 수성을 점치는 시각이 많지만 정 교수는 “꼭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가 아니어도 디지털 화폐로 시스템이 바뀌면 달러 지위가 지금 같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실시간 통·번역기능 등 기술적 진화가 언어권력 역시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을 쓰면서 줄곧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에 그는 “우리가 미국 편을 들 것이냐, 중국 편을 들 것이냐는 핵심이 아니다. 더 이상 늦지 않게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경제 플랫폼 시대에 올라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택시업계 반발에 카풀(승차공유) 서비스 하나도 시도 못하는 국내 현실을 반면교사 삼아야 된다는 의미로 들렸다.

“지금 같은 혁명적 전환기에는 가만히 있는 게 가장 리스키한(위험한) 겁니다. 과감히 투자하고 시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택시기사들 상황이 어렵지만 4차 산업으로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만큼 그에 걸맞은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신산업이 기존 산업을 위축시키는 부분은 해법을 찾아야지, 손 놓거나 물러서면 안 됩니다. 재교육을 통해 신산업으로 고용을 흡수하고, 기존 산업과 함께 발전하는 방안도 모색하며 전략적이고 발 빠르게 대처해야죠. 더 늦으면 한국도 ‘자충수의 덫’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되니까요.”[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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