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적폐' 몰려 美 고등훈련기 수주전 발목잡힌 KAI

침몰하는 방위산업

보잉 컨소시엄에 밀려 탈락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 9월 18조원 규모의 미국 공군 차기 고등훈련기(APT) 사업 수주에 실패했다. 경쟁사(보잉·사브 컨소시엄)와의 현격한 입찰 가격 차이가 주원인이지만 방산비리 수사가 KAI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KAI가 ‘비리 기업’으로 몰리면서 미 공군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APT 사업은 미 공군의 노후 훈련기 T-38을 대체할 신형 훈련기 350대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KAI는 미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이뤄 보잉·사브 컨소시엄과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였다. 수주에 성공하면 미 해군과 제3국 등에서 총 1000여 대의 추가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이 지난해 7월 KAI 수사를 시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수사가 3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APT 사업 수주작업을 비롯한 KAI의 핵심 업무는 말 그대로 ‘올스톱’ 됐다. 방산비리가 분식회계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기업 신뢰도까지 크게 하락했다. 수사 과정에서 당시 김인식 KAI 부사장(해외사업본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월 1심 재판에서 KAI 주요 임원들의 방산비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됐던 하성용 전 KAI 사장도 9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1심)을 받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가 KAI의 APT 사업 수주전에 불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며 “정부에 비리 기업으로 찍힌 기업과 누가 함께 사업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KAI에 대한 감사원 및 방위사업청의 감사·조사도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 났다. 정부는 2016년 이후 KAI를 상대로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KHP) 투자금 환수 소송’ 등 5건의 민·형사 소송을 걸었지만 이 중 4건(1·2심 판결 포함)에서 패소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