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시술 90% 불법'… 또 불거진 낙태죄 논쟁

'낙태 시술 의료인 1개월 자격정지'에 준법투쟁 나선 산부인과 의사들

산부인과의사회, 처벌 유예를
"사회적 합의 안된 상태에서
무조건 처벌은 현실과 괴리"
여성계도 합법화 촉구 시위

정부 부처간에도 찬반 팽팽
여가부는 폐지, 법무부는 반대
종교계 등 낙태죄 폐지 반대

위헌소송 중인 헌재 판단 '주목'
‘낙태 합법화’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또다시 격화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불법적 낙태 시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현재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형법 조항을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찬반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낙태 시술 중 90%가 불법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적인 낙태 시술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17일 보건복지부가 의료인 처벌 기준이 되는 비도덕적 진료행위 항목에 낙태 시술을 명시하는 내용의 시행규칙을 시행한 데 따른 반발에서다. 낙태 시술을 한 의료인은 1개월간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뤄지는 낙태 시술 중 90%가량이 사회·경제적 이유로, 불법적으로 행해진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현실과 괴리가 있다”며 “헌재에서 낙태 위헌 여부의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해당 행정처분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왼쪽)이 28일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는 형법으로 낙태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에 따라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질환이 있을 때’ ‘강간 또는 준강간 등에 의한 때’ 등의 사유가 있으면서 ‘임신 24주 이내’일 때에 한해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시행규칙 개정은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을 구체화해 처분 기준을 정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는 올해 넘길 듯

그러나 복지부의 시행규칙 개정을 놓고 여성계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은 여성이 임신·출산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해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5일 여성단체 비웨이브는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촉구 집회’를 열고 고시안 철회를 요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해 11월 낙태죄 폐지 청원 글에 23만 명 이상이 동의한 데 이어 복지부 고시 시행 이후 다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청원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정부 부처 중에서는 처음으로 여성가족부가 낙태죄 폐지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반면 낙태죄 폐지에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태아도 생명으로 간주해야 하고,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이 마련되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 등 대학교수 96명은 이 같은 우려를 담아 최근 헌재에 낙태죄 폐지 반대 탄원서를 제출했다. 종교계에서는 천주교계가 헌재에 같은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법무부도 헌재에서 낙태죄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형법이 합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주장은 여태까지 불법행위를 해왔음을 자인하는 꼴”이라며 “오히려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헌법소원은 2012년에도 있었다. 당시 헌재는 4(합헌) 대 4(위헌)로 찬반이 갈렸지만 정족수 미달로 결국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부터 5년 뒤인 지난해 2월 불법 낙태 수술 혐의로 재판을 받던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가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면서 위헌소송이 다시 시작됐다.헌재의 판단이 바뀔지도 관심거리다. 현 정부에서 새로 임명된 헌법재판관들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태죄 폐지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지난 5월 낙태죄 관련 공개변론을 했고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 9명 중 5명이 임기 만료로 다음달 한꺼번에 바뀔 예정”이라며 “사회적 관심이 많은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보여 올해 선고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임락근/안대규/임유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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