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前 통일부 장관 인터뷰 "北·美회담, 국제질서 대격변의 신호탄… 첫 만남 이후가 본게임"

트럼프-김정은 12일 세기의 담판
전문가들 어떻게 보나

앞으로 한반도 정세 이해하려면
그동안의 모든 고정관념 버려야

北·美 수교 발판 마련되고
수년 내 평양에 美대사관 예상

회담 이후 북한과 경협분야
美·中 등 주도권 경쟁 치열할 것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비핵화에 대해 미국과 북한, 국제사회가 접점을 찾기 시작할 것”이라며 “한반도 정세 지각변동의 작은 씨앗”이라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국제질서의 대격변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입니다. 앞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은 이번 첫 회담 이후가 진짜 시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과 북한이 머리를 맞대리라고 올초만 해도 상상이나 했느냐”며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 지각변동의 작은 씨앗일 뿐”이라고 강조했다.40년 넘게 북한을 연구하고, 두 차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그는 “앞으로의 정세를 이해하려면 한반도와 미국, 동북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그동안의 모든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회담 현장에 있는 모든 중심인물이 역사의 변화를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북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미 수교의 발판까지도 마련되리라 예상한다”며 “미국대사관이 평양에 개설될 날도 수년 뒤면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최소한 그렇게 예측할 수 있는 힌트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그러면서 “회담 후 어떤 내용이 발표돼도 놀라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회담 현장을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두 사람 모두 탁월한 협상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세계 제일 고수끼리 펼치는 수 싸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주류 정치인의 길을 걷지 않았을 뿐 아주 세밀하고 계산적인 인물”이라며 “거래를 성공적으로 끌어내는 감각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겉으로만 즉흥적으로 행동할 뿐 실제로는 주도면밀하다는 설명이다. 김정은에 대해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여러 가지 노하우를 전수받은 젊은 독재자”라며 “그를 보좌하는 노련한 관료도 많아 양측 모두 예측 불가능한 쇼맨십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해 진정성을 보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정 전 장관은 “이제 북한에 핵은 교환가치를 얻어낼 수단”이라며 “북한도 새롭게 변화된 시대에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걸 모른다면 북한이 이번 회담에 나설 이유도 없었다”며 “김정은은 비핵화와 관련해 우리가 예측하는 범위 이상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미국에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구체적인 보상을 미국에 요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이번 회담에서 모든 게 해결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북한은 비핵화 과정에서 점차 개방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 전 장관은 “회담 이후 북한과의 경제협력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주도권 경쟁이 아주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회담 후 북한을 경제적 수단으로 장악하려 할 것이고, 중국은 서부지역 위주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출발점을 동북3성 쪽으로 옮겨서 북한을 일대일로사업에 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역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남북한의 철도를 연결해 새로운 운송로를 뚫으려 안간힘을 쓸 것이라고 분석했다.정부가 관심을 두고 있는 종전선언 논의와 관련해서는 “올해 안에 매우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이번 회담은 종전선언과 연결돼야 진정한 냉전체제 종식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수차례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상당히 향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남북한 정상회담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이번 회담이 제대로 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주변국에 대한 외교적 설득력을 키워야 하겠지만 전망은 낙관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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