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에 100억 날린 증권맨 실수…법원 판단은

"실수인 줄 알면서 파생상품 계약했다면 취소 가능"

증권사 직원이 파생상품 매수주문을 내면서 가격란에 소수점을 잘못 찍어 순식간에 엄청난 손해를 봤다면 과연 그 계약을 돌이킬 수 없는 걸까.미래에셋증권 직원 A씨는 2010년 2월 캐나다왕립은행으로부터 미국 달러화 선물 스프레드 거래를 위탁받고는 한국거래소 단말기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던 A씨는 매수주문 가격란에 예정 가격인 `0.80원'을 쳐서 넣는다는 것이 그만 `80원'을 입력하고 말았다.

달러화 선물 스프레드 거래는 달러 선물과 현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얻는 거래를 말한다.여기서 무려 100배나 비싼 예정가로 매수주문을 불렀으니 매매상황에 온통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던 다른 증권맨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주문이 나온 지 불과 15초 만에 D증권 등 여러 곳에서 매도주문이 쏟아져 들어왔고, 순식간에 1만5천 계약이 체결돼 버렸다.

A씨의 한순간 실수로 미래에셋증권에는 최대 12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다행히 이후 금융기관 두 곳으로부터 `단순실수였다'는 양해를 얻어 5천176 계약은 무효로 처리됐다.

하지만 9천324 계약을 체결한 D증권은 요지부동이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제시한 실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정상적으로 매도계약이 체결됐으니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할 순 없다며 미래에셋 측 요청을 거부한 것이다.미래에셋증권과 이 사고 때문에 보험금 50억원을 지급한 현대해상화재보험은 결국 소장을 작성해 법원을 찾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미래에셋증권 등이 "매수주문 실수로 인한 부당이득금 77억여원을 돌려달라"며 D증권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민법상 중대한 과실로 착오가 발생한 경우 착오를 이유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는 없지만, 만약 상대방이 착오인 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취소가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미래에셋증권의 주문이 주문자의 착오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D증권이 차액을 얻고자 단시간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내 계약이 성사된 것"이라며 "미래에셋증권에 23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에 50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실수를 저지른 정황과 이후 거래 당사자들의 의도를 예리하게 읽어낸 재판부의 판단으로 미래에셋증권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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