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일가의 사익편취, 계열사 부당지원 등을 국민연금의 ‘중점관리사안’에 포함시키는 건 “정부가 국민연금을 재벌개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 금융위원장)은 16일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안정적인 수익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정부가 관리사안을 제시하는 건 정부 정책에 국민 노후자금을 이용하겠다는 취지”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반면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교수)은 “일감 몰아주기 같은 명백한 주주가치 훼손 사례가 없다면 국민연금이 지배구조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과도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이달 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세부 방안 중 4대 핵심 쟁점을 뽑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지상 공청회’를 열었다. 전 전 이사장과 조 교수, 이찬우 국민대 교수(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다.
"계열사 지원까지 감시… 정부가 국민연금에 재벌개혁 가이드라인 주는 것"
(1) 중점관리사안 확대

국민연금은 배당에만 국한됐던 중점관리사안을 횡령·배임, 사익편취, 계열사 부당지원, 과도한 이사 보수 한도 등 지배구조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문제가 있는 기업은 비공개 대화를 하되 개선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를 공개하고 의결권 행사와도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조 교수는 “일본과 유럽도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관투자가가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를 점검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해놨다”며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 전 이사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는 경직된 법이 아니라 참고만 하는 가이드라인”이라며 “정부가 이런저런 사안을 의무적으로 점검하도록 강제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송 부원장도 “주주가치 훼손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국민연금은 일반 주주와 달라 정치적 입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구성

보건복지부는 현재 9명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14명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확대 재편할 계획이다. 위원 중 3명이 요구하면 의결권 및 주주권 결정을 기금운용본부에서 넘겨받을 수 있다.

전 전 이사장은 “캐나다, 네덜란드 등 선진 연기금 중 의결권·주주권 행사를 외부 위원회에 위탁하는 경우는 없다”며 “국무위원들이 결정해야 할 일을 국민경제자문회의에 떠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송 부원장 역시 “수탁자책임위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의결권 행사를 모두 외부 운용사에 맡겨야 하며 이런 위원회는 없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 의결권 행사 주총 사전 공지

국민연금은 앞으로 의결권 및 주주권 행사 결정 사항을 주주총회 이전에 공지하기로 했다. 다른 주주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해 의결권 행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국민연금이 국내 기업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다른 기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주주총회에서 찬반 의견을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송 부원장도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미리 의결권 결정 사항을 공지하는 건 ‘나를 따라오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 교수는 “국민연금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면 시장에서 역풍이 불 것”이라며 “오히려 시장의 검증을 받는 순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4) 자산운용사에 의결권 위임

국민연금은 과도한 영향력에 따른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커지자 민간 운용사에 위탁하고 있는 간접 투자분(국내 주식의 45%)에 한해 의결권까지 운용사에 위임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위탁운용사들이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취지와 달리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조 교수는 “일본 공적연기금(GPIF)은 의결권 행사를 모두 민간 운용사에 위탁하고 GPIF는 운용사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준수하는지만 점검한다”며 “그 결과 GPIF의 수익률이 올라가고 자산운용업계도 발전하는 선순환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