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립식물원 소속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열대 우림 지역에서 식물 종다양성 보존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표본을 채집하고 있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 제공
영국 왕립식물원 소속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열대 우림 지역에서 식물 종다양성 보존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표본을 채집하고 있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 제공
아프리카 케냐 남서부에는 ‘소다 호수’로 불리는 알칼리성 소금 호수가 있다. 천연 탄산소다 호수에는 풍부한 미네랄과 함께 소금물을 좋아하는 호염성 미생물이 산다. 영국 레스터대 미생물학자 윌리엄 그랜트 교수와 바이오전문회사 제넨코(현 듀폰)는 1992년 이 호수에서 두 종의 미생물을 찾아내 화학 표백제를 대체할 물질을 개발했다. 케냐 정부는 2004년 이들이 어떤 허가도 받지 않고 생물표본을 가져갔다며 수백만달러 규모의 소송을 걸었다. 양측은 결국 케냐 야생생물청에 기부금을 내고 청바지가 판매될 때마다 발생하는 수익 일부를 러닝 로열티로 주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특정 국가의 토착 생물자원이 수탈되지 않도록 공식적으로 막는 국제협약인 ‘나고야의정서’의 국내 이행법률이 올 하반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의정서에 일찌감치 서명한 나라는 자신들의 토착 유전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종의 전쟁’에 돌입했다.

◆토종자원 DNA, 세포도 함부로 사용 못 해

나고야의정서는 2010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고 2014년 10월 발효됐다. 지난 3월까지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196개 중 95개국이 비준을 마쳤다. 의정서에 따르면 각국은 특정 국가가 보유한 동식물뿐 아니라 DNA, 종자, 배양체, 천연물, 세포주 같은 자원까지 허가 없이 가져다 쓸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생물자원과 전통지식을 이용해 이익을 내면 자원 제공국과 이익을 나눠야 한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자원 보호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해외 유전자원에 의존하는 나라와 기업엔 자원 수급 불안정, 사용료(로열티) 상승에 따른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미 세계 곳곳은 생물자원을 둘러싼 전쟁터가 되고 있다.

일본 화장품회사 시세이도는 인도네시아의 자생식물인 ‘자무’에서 추출한 원료로 자외선 차단 미백제와 노화방지 화장품을 개발하고 51건에 이르는 특허까지 출원했다. 인도네시아 환경단체들은 2001년 토착민에게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생물 해적 행위라며 대응에 나섰다. 시세이도 측은 결국 이듬해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특허를 모두 철회했다.
"미생물에도 로열티 내라"…불붙은 생물자원 전쟁
◆생물자원 70% 의존 ‘비상’

한국도 토종 생물자원이 해외로 무단 유출된 일이 있다. 1947년 미국으로 반출된 한국 토종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는 개량을 거쳐 ‘미스킴라일락’이란 이름으로 상품화됐다. 미국 라일락 매출 3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좋고 국내로 역수입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자원 부국인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은 일찌감치 ‘유전자원에 관한 접근 및 이익 공유(ABS)’에 대한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 생물 유전자원의 70% 가까이를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부담이 크다. 실제로 국내 김 생산량의 20%, 미역 15%가 일본 품종이다. 파프리카 100%가 네덜란드와 스위스 품종이고, 양파의 80%와 양배추의 80%가 일본산이다. 제약, 화장품, 의약품 산업에서 사용되는 생물자원의 67%가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연간 지급되는 로열티만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의정서 발효로 연간 3500억~5000억원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국내에선 지난 1월 나고야의정서 국내 이행법률인 ‘유전자원의 접근·이용·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유전자원법)이 제정·공포됐다. 비준동의안도 3월 국회를 통과됐다. 윤헌주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은 “국내 토종 생물자원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생물 유전자 발굴과 보존체계를 표준화하고 생물 유전자원 확보를 위한 국제 협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