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무거워 똑바로 가요!"…세계 그린 점령한 '말렛퍼터'
골퍼들은 대개 이 퍼터를 ‘배 퍼터’라고 부른다. 알파벳 ‘D’자처럼 불룩 나온 배를 닮아서다. 퍼터 페이스 뒤통수에 달린 균형추 모양에 따라 ‘날개 퍼터’ ‘마징가 뿔 퍼터’라고 구분해 부르는 이도 많다. 골프용품 업계에선 ‘말렛형(mallet·망치형) 퍼터’로 싸잡아 부르는 이 퍼터가 요즘 일반형인 ‘L자 퍼터’를 제치고 대세로 떠올랐다. 말렛족으로 전향한 국내외 프로들이 속속 챔프에 오르자 아마추어 골퍼 사이에서도 ‘퍼터 전향’ 바람이 솔솔 불고 있다.

◆매킬로이·존슨 “효험 봤어요”

말렛형 퍼터는 여자 골퍼 사이에선 이미 주류로 자리잡았다. 최근 2~3년 사이 한층 뚜렷해진 변화다. ‘골든슬래머’ 박인비(28·KB금융그룹)가 ‘이빨’처럼 생긴 뒤통수를 단 세이버투스 퍼터와 골프공 모양의 꼬리를 단 투볼 퍼터로 프로무대를 평정한 영향이 컸다. 차세대 골프 여제로 떠오른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 2위 에리야 쭈타누깐(태국)도 모두 말렛형을 쓴다. 여자프로골프 세계랭킹 1~10위 가운데 L자형을 쓰는 선수는 3명뿐이다.

‘세계 골프의 표준’으로 떠오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는 말 그대로 ‘말렛 천국’이다. 올 시즌 7승을 올린 박성현(23·넵스)과 1승을 챙긴 정예나(28·SG골프)를 제외하면 모두 말렛족으로 분류된다. 17명의 챔프 가운데 15명이다.
"뒤통수 무거워 똑바로 가요!"…세계 그린 점령한 '말렛퍼터'
‘여자들의 퍼터’로 부르며 말렛을 기피하던 남자 골퍼들까지 속속 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차세대 골프 황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전향이 가장 극적인 사례다. 타이거 우즈(미국), 조던 스피스(미국) 등과 함께 L자족의 상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퍼팅 난조에 시달려온 그는 지난달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개막 1주일 전에 말렛으로 바꾼 뒤 곧바로 페덱스컵 챔피언에 올라 1000만달러의 주인공이 됐다.

매킬로이뿐만 아니다.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는 거미를 닮은 스파이더 모양의 말렛 퍼터를 써 ‘1인자’에 올랐고, 2위 더스틴 존슨(미국)도 올 시즌 말렛 퍼터를 들고나와 첫 메이저 제패(US오픈)의 꿈을 이뤘다. 존슨처럼 장타력에 비해 쇼트 퍼트가 약했던 안병훈(25·CJ)도 퍼터 전향 효과를 톡톡히 봤다. 1~2m 짧은 퍼트를 자주 놓치던 그는 2014년 말렛형으로 교체한 뒤 지난해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1승(BMW챔피언십)을 챙긴 뒤 신인왕에 올랐다.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김흥식 캘러웨이 전무는 “2013년 5 대 5 정도이던 L자형과 말렛형 판매 비율이 올해 3 대 7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말렛형 퍼터 비중을 높인 오디세이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증가 행진을 벌이고 있다. 골프용품업계 관계자는 “일자형 퍼터의 제왕이던 우즈가 몰락한 것도 트렌드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진성 강하지만 곡선엔 약해

말렛형 퍼터는 L자형 퍼터에 비해 직진성이 강하다. 퍼터 헤드가 더 무겁고 넓은 헤드뭉치에 무게가 분산돼 흔들림이 적다.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관성 모멘텀이 커 정확하게 맞히지 못해도 실수할 확률이 낮다는 얘기다.

볼과 홀컵을 향해 퍼터 페이스를 정렬하기도 수월하다. 직선으로 쭉 미는 스타일로 스트로크하는 골퍼에게 대체로 적합하다.

반면 미세한 그린의 굴곡을 읽어 홀컵을 향해 볼을 곡선으로 굴려야 하는 퍼트에선 L자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말렛형을 지나치게 추종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퍼터 피팅 전문가인 우원희 핑 부장은 “공을 눈 바로 아래 직각으로 놓지 않으면 L자와 말렛형의 스트로크 차이가 없어진다”며 “퍼트 어드레스 때 공의 위치부터 바로잡은 뒤 자신의 스트로크가 직선 스타일인지, 곡선 스타일인지를 따져 퍼터를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