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성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한국의 반도체 연구인력이 중국보다 턱없이 적어 반도체산업이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한국의 반도체 연구인력이 중국보다 턱없이 적어 반도체산업이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질문을 던질 겨를도 없었다. 인사를 나누며 “한국 반도체산업 위기론과 해법에 대해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적느라 명함을 건넬 틈도 없었다. 1일 서울대에서 만난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재료공학부 교수)은 그만큼 속에 쌓인 것이 많은 것 같았다. 주제가 반도체이다 보니 전문용어가 수시로 등장했다. 쉽지 않은 인터뷰였다. 하지만 결론만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화려한 성과를 자랑하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부족. 그는 “한국 반도체업계는 ‘뿌리(인재)’가 말라가는 나무와 같다”며 “지금의 성공에 취해 있다가는 중국발 태풍에 고사(枯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업체에서는 좋은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교수가 부족하고 연구과제도 별로 없는데 제대로 배울 수 있겠습니까. 박사 학위를 받고도 반도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은 특히 우수한 인재가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답답합니다.”

▷왜 지금 우수 인재가 많이 필요합니까.

“한국 반도체업체들은 제품을 잘 만듭니다. 하지만 그 제품을 생산하는 장비는 모두 일본이나 미국산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한다는 수십조원의 절반은 외국으로 가버리는 거죠. 지금 메모리반도체는 공정 개선만으로는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소재나 장비 쪽에서 혁신적 발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워낙 인재가 부족한 데다 그나마 쓸 만한 사람은 대기업에만 가거든요.”

▷외국은 다른가요.

“미국에 가 보면 제조업체인 인텔부터 그 밑에 장비, 소재업체에까지 우수 인재가 두루 포진해 있어요. 장비업체에 간다고 ‘취업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서울대 나와서 반도체 장비업체에 간다고 하면 당장 ‘미쳤느냐’는 소리부터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요즘은 중국도 우리보다는 좋은 인재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중국이 메모리반도체에 뛰어들면서 위기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메모리반도체의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30년 전을 생각해 보세요. 국내 업체들에 일본 히타치나 NEC는 하늘 같은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세계 10위권에서 사라지고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맨바닥에서 시작해 일본 업체들을 뛰어넘었어요. 우리가 했는데 중국이라고 못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국내 업체와 중국 업체 간 기술 격차는 아직 상당하지 않습니까.

“메모리반도체의 공정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설계는 어렵지 않습니다. 돈과 사람을 투자하면 언젠가는 나오게 돼 있는 제품입니다. 중국은 자금력을 갖췄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공부한 우수한 인재들도 많고요.”

▷인텔도 30년 만에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새로 진입했습니다.

“인텔이 ‘3D크로스포인트’라는 신개념 메모리를 내세우고 들어왔죠. 지금 쓰는 컴퓨터에는 3D크로스포인트와 같은 뉴메모리가 필요 없습니다. 한국 업체들이 잘 만들고 있는 D램, 낸드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작은 상자만한 슈퍼컴퓨터를 제작하려면 뉴메모리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먼 미래 얘기가 아니에요. 당장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오면 차에 슈퍼컴퓨터 한 대씩 설치해야 합니다. 주행하면서 엄청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니까요.”

▷국내 업체들도 10년 전부터 뉴메모리 개발에 뛰어들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습니다. 서울대 공대에서 최근 내놓은 ‘축적의 시간’이란 책에서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죠. 한국은 많은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했지만 이 중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제품은 많지 않아요. 기술과 노하우가 꾸준히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서울대 공대의 결론입니다. 기업의 일이라 함부로 말하긴 힘들지만,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바뀔 때마다 뉴메모리 연구를 중단하고, 또다시 시작하고 이런 일이 반복됐다고 들었습니다.”

▷한정된 재원을 반도체 대신 바이오 등 미래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반도체를 가르치는 교수지만 반도체를 대체할 만한 산업이 있다면 저도 그 주장에 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산업이 10~20년 내에 반도체만큼 돈을 벌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제약업으로 스위스나 미국을 제치고 1년에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단군 이후 국내 산업이 세계에서 압도적인 1등을 한 것은 반도체뿐입니다.”

▷정부도 위기의식을 갖고 반도체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제껏 정부의 지원정책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었어요. 이런 방식은 지원받는 동안에는 ‘반짝’하지만 효과가 오래 못 가요. 원천기술이라는 게 1~2년 만에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학, 정부, 기업이 함께 오래 연구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 줘야 해요. 서로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 가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래서 반도체의 패러다임을 바꿀 미래 소재 등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좋은 인력들이 생기면서 업계의 수준도 높아질 것입니다.”

▷후임 반도체 연구소장에 반도체 비전공 교수가 유력하다고 들었습니다 (서울대는 연말 임기가 끝나는 그의 후임에 다른 공학 분야를 연구한 교수를 선임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렇게 됐습니다. 반도체를 전공한 교수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서울대에서 18년째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데 제가 온 뒤로 반도체를 전공한 교수가 딱 한 명 더 임용됐습니다. 선배들은 모두 연구소장을 했거나 퇴임했고요. 그래서 부득이 비전공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게 될 듯합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자금이 바이오에 몰리면서 반도체에선 연구자금을 받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한국 반도체업체들은 지식재산권(IP)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요. 학계에서 좋은 특허를 내도 헐값에 가져가거나, 교묘히 법망을 피해 무단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반도체를 연구하기 싫어하는 거죠.”

▷현재 상황이 많이 답답하겠습니다.

“몇억원이 없어서 연구실에 장비도 제대로 못 삽니다만…. 반도체가 없으면 우리 자손들은 뭐 먹고 사나요. 지금까지 교수생활 하면서 460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정년퇴임하기 전까지 1000편을 채우는 게 목표입니다.”

[월요인터뷰]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의 '반도체 위기론'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은

메모리 소자와 반도체 물질·공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순수 국내파 학자지만 그의 연구실에는 외국 유학생이 앞다퉈 몰려오고 있다.

황 소장은 지난 5월 낸드플래시보다 저장하고 쓰는 속도가 1000배 빠르고 크기는 절반 이하인 차세대 저항변화메모리(Re램) 관련 신기술을 개발했다. 지난달에는 인용 횟수가 세계 상위 1% 안에 드는 논문 중 특별히 학술적 공헌도가 높은 논문을 제출한 공로로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제7회 지식창조대상’을 받았다. 그가 2010년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게재한 Re램 관련 논문은 지금까지 700회 넘게 인용됐다.

부인인 최정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도 반도체를 연구하고 있다. ‘반도체 부부’로 불리는 이유다. 황 소장은 “대학원 때 학부생들의 수학시험 채점을 하다 도저히 감점할 수 없는 만점 답안지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학부 3년 후배인 아내가 제출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1964년 경북 울진 출생 △1987년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 졸업 △1993년 서울대 무기재료공학 박사 △1993~1994년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 △1994~1997년 삼성전자 연구원 △1998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2012년~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포트’ 부편집장

남윤선/오형주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