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2일 오전 8시48분

[마켓인사이트] 우선주 '무법지대'
기업들이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의 우선주 가치를 어떻게 산정할지 명확한 법규가 없어 혼란을 겪고 있다. 우선주가 없는 합병기업(존속기업)이 피합병기업(소멸기업) 우선주 주주들에게 신주를 발행할 때 신주 가격에 대해 현행 자본시장법이나 시행령에 관련 조항이 없어서다. 기업은 불공정 시비를 피하기 위해 관련 논문까지 샅샅이 뒤져 우선주 가격을 산정하는 등 애를 먹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흡수합병하는 삼성물산 우선주 주주들에게 우선주 신주를 발행해 나눠주기로 하면서 “우선주가 없는 합병회사가 새로 우선주를 발행할 때의 가치 산정에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사실을 최근 주주들에게 알렸다. 삼성물산은 보통주 1억5621만7764주와 우선주 464만8653주가 발행됐지만 제일모직은 보통주(1억3500만주) 외에 우선주가 없다.

현행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상장사가 다른 상장사와 합병할 때 최근 1개월 이내 주가를 평균해 합병기업과 피합병기업의 주식교환비율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에 없던 종류의 주식(우선주)을 새로 발행할 경우 가격을 어떻게 결정할지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제일모직은 공정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자체에서 정한 기준으로 우선주 가격을 산정했다. 자사 보통주와 삼성물산 보통주의 가격비율을 적용해 삼성물산 우선주와 비교한 자사 우선주 가격을 산출한 것. 이어 이 우선주 가격과 보통주 가격이 다른 상장사와 비교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파악했다. 이를 통해 자사 우선주와 보통주의 가격 차이(괴리율) 37.58%가 조사대상 47개 상장사의 평균 가격 차이 범주(34.39~48.17%)에 들어간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우선주 신주 가격을 확정했다.

SK C&C는 (주)SK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자사 우선주 신주 가치를 산정하기 위해 20여년 전 논문까지 참조했다. SK C&C는 보통주만 4400만주가 발행된 반면 (주)SK는 보통주 4696만1812주 외에 우선주 50만9920주가 있다. SK C&C는 우선주와 보통주를 함께 상장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기업 127개의 우선주와 보통주 가격 차이를 전수조사했다. 우선주 가격을 연구한 1994~2010년 발표 논문 6개를 참조해 127개 기업의 최근 10년 주가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우선주와 보통주의 평균 가격차이를 조사해 자사 우선주 가격 산정에 반영했다.

경제계는 관련 기준을 마련하거나 아예 우선주 가치에 대한 자율산정을 법적으로 명문화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시각은 좀 다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통주와 달리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법에서 따로 합병비율을 규정할 만큼 중요성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향후 의결권 있는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상환우선주(RCPS)도 있는 만큼 금융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박하고 있다.

■ 우선주 괴리율

보통주 대비 우선주 가격 비율. 우선주가 의결권이 없고 배당액도 달라 발생한다. 의결권 가치가 높을수록 괴리율이 커지고, 보통주보다 우선주 배당이 많을수록 괴리율은 작아진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