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는 공유 경제의 천국이다. 공유 경제 비즈니스 모델의 대표 주자인 우버(차량)와 에어비앤비(숙박)가 모두 이 도시에서 창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은 나란히 1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이미 스타트업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둘러싼 논쟁에 아랑곳없이 샌프란시스코는 지금도 공유 경제 붐이다. 공유 경제 모델은 식품 배달(인스타카트), 허드렛일(태스크래빗), 빨래(워시오) 등 도시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서비스를 시작한 럭스 발레는 샌프란시스코의 수많은 공유 경제 스타트업 중 하나다. 회사 이름 그대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신청하면 주차 대행 요원(발레)이 와서 주차를 대신해 준다.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인 스타트업은 이미 여럿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저크(Zirx)와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의 카본(Caarbon), 뉴욕에서 탄생한 발레애니훼어 등이 경쟁 서비스다. 하지만 럭스 발레는 작년 10월 구글 벤처스 등으로부터 550만 달러의 자금 유치에 성공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주차 공간 찾으려 평균 27분 헤매

한국계인 커티스 리 최고경영자(CEO)가 처음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2년 전이다. 샌프란시스코는 평소에도 주차난이 심각한 곳으로 악명이 높다. 금융회사와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는 금융 구역은 매일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 리 CEO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레스토랑에 한 달 전 예약하고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주차 대행 서비스가 없어 주차할 곳을 찾아 30분 이상 헤매다 끝내 아내와 말다툼을 벌였다. 예약이 취소될까봐 레스토랑에 3번이나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가까스로 레스토랑에 도착한 리 CEO는 즉시 펜과 종이를 달라고 부탁해 그 자리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 창업까지는 6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리 CEO는 구글과 징가를 거쳐 당시 그루팡에서 소비재 부문 헤드로 일하고 있었다. 200명이 넘는 큰 팀을 이끄는 중요한 자리였다. 많은 사람이 고소득과 승진이 보장된 직장을 떠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아이디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이걸 하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글에 있을 때도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트랩에 갇힌 느낌이었다”며 “항상 스스로 할 수 있는 내 일을 꿈꿨다”고 말했다. 리 CEO는 전 직장 동료였던 프로그래머를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공동 창업자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서비스 골격을 담은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주차 앱은 이미 여러 개 나와 있었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대부분이 주차장을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전부였다. 실제로 차를 몰고 예약한 주차장의 지정된 장소까지 찾아가는 것은 여전히 운전자의 몫이었다. 리 CEO는 주차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교통 트래픽의 30%가 주차장을 찾는 운전자들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주차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면 도시 교통량의 30%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주차를 위해 평균 27분을 허비하고 3.5마일을 헤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차 위반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매년 7만 대가 견인 조치되고 있다. 견인된 차량을 되찾으려면 평균 400달러가 들어간다.

커티스 리 CEO는 직접 경험한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럭스 발레를 창업했다.
커티스 리 CEO는 직접 경험한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럭스 발레를 창업했다.
럭스 발레 서비스는 이용이 매우 편리하다.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원하는 지역을 입력하거나 지도에서 해당 지역으로 핀을 이동시키면 된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럭스 발레 시스템이 고객의 스마트폰을 활용해 경로 추적을 시작해 주차 대행 요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럭스 발레 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 금융 구역으로 가는 고객들이다. 이를테면 팰로앨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하면서 서비스를 신청하면 고객의 이동 위치를 자동으로 추적해 요청 장소에 주차 대행 요원을 미리 대기시킨다. 교통 정체에 걸려도 럭스 발레에 따로 전화할 필요가 없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푸른색 재킷을 입은 럭스 발레의 주차 대행 요원에게 차 키를 넘겨주면 그만이다. 럭스 발레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리 CEO는 “올해 미국 내 5~8개 도시에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비스 요금은 시간당 5달러이며 하루 15달러가 최고액이다. 샌프란시스코 금융 구역의 주차 요금이 하루 40~50달러, 시간당으로는 10달러 안팎인 것과 비교해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주차 대행이 럭스 발레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부는 아니다. 주유와 세차를 신청하면 기름이 가득 차고 말끔하게 닦인 차를 돌려받을 수 있다. 주유는 기름값+7.99달러, 세차는 40달러를 추가로 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선노인 ‘럭스 카트’ 서비스다. 고객이 필요한 식료품이나 기저귀 등을 대신 구매해 차에 실어주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스타카트를 벤치마킹한 서비스다. 2012년 설립된 인스타카트는 크라우드 소싱으로 모집한 계약직 ‘개인 쇼퍼’들이 여러 매장을 돌며 고객이 주문한 식료품을 사서 당일 배달해 주는 서비스다. 교통 체증과 일에 시달리는 맞벌이 주부들에게 큰 인기다. 럭스 발레의 카트 서비스는 시범 서비스 기간 동안 구매 물품 실비만 받고 대행료는 받지 않는다.

수익 늘어 주차장 업자도 환영

럭스 발레의 주차 요원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우선 범죄 전력과 운전 경력(최소 7년 무사고) 체크를 통과해야 한다. 이어 운전 테스트가 실시되고 4~5명이 참여하는 면접이 진행된다. 리 CEO는 “채용률이 30%에 불과할 정도로 까다롭다”고 말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지역에만 60명의 주차 대행 요원이 활동 중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우버나 인스타카트 등 유사한 공유 경제 서비스 일을 함께한다. 리 CEO는 “스마트폰에 여러 개의 앱을 띄워 놓고 수입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럭스 발레의 장점은 몸만 있으면 된다는 점이다. 차량은 물론 자전거도 필요가 없다. 럭스 발레의 피크 타임은 출근 시간(오전 7~10시)과 퇴근 시간(오후 5~8시)이다. 그 외 시간대에는 주차 대행 요원의 할 일이 많지 않다. 주유와 세차, 식료품 구입 대행 등 추가 서비스를 계속 내놓은 것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우버 등 많은 공유 경제 서비스는 전통 업체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우버는 곳곳에서 기존 택시 업체들과 충돌한다. 하지만 럭스 발레는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다. 기존 주차장 업체들은 럭스 발레 서비스를 오히려 환영하고 있다. 리 CEO는 “처음 시작할 때는 주차장 업자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며 “이제는 럭스 발레가 샌프란스시코에서만 수백 개의 주차 공간을 임대해 쓰기 때문에 먼저 찾아온다”고 말했다.

리 CEO는 “주차장은 호텔 산업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호텔은 해당 날짜까지 방을 팔지 못하면 고스란히 수익을 놓치게 된다. 주차장도 마찬가지다. 또한 주차장 업자들은 시내에 주차장을 여러 개 소유한 경우가 많다. 리 CEO는 “한쪽 주차장은 아침부터 꽉 차 차를 더 받을 수 없지만 다른 주차장은 텅텅 빈 경우가 자주 생긴다”며 “럭스 발레가 고객을 적절히 배분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럭스 발레 고객들은 실제로 자신의 차가 어디에 주차돼 있는지 크게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한 차량 관리는 고객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 중 하나다. 럭스 발레는 앱을 통해 언제든지 주차된 차량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고에 대비한 100만 달러의 보험도 들어두고 있다. 리 CEO는 “럭스 발레는 기존의 주차 대행 업체들보다 훨씬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업체들은 경력 체크도 없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미국)=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00호 제공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