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대립·융합의 역사가 만든 중국음식
1644년 베이징에 입성해 통일 왕조로서 청나라 시대를 연 만주족은 한족 문화에 관용을 베풀었다. 명나라의 궁성과 조직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아 국가를 운영했고, 인사와 행정에서도 만주족과 한족을 똑같이 채용했다.

이런 만한(滿漢) 혼합의 분위기는 식생활에도 적용됐다. 만한전석(滿漢全席)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만한전석은 원래 지방에 부임한 만주족 관리를 접대하기 위해 한족이 고안한 연회방식으로, 만주족 요리와 한족 요리를 똑같은 숫자로 내놓았다. 건륭제 때에는 만한전석의 크고 작은 요리가 108종에 이르렀고, 여기에 만주족의 점심(點心·가벼운 간식) 44종이 더해졌다고 한다.

《혁명의 맛》의 저자는 이런 이유로 “만한전석은 만한 융화를 위한 정치적 요리였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음식을 소재로 중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본다. 황제들의 중국부터 루쉰의 시대, 공산당 시대, 문화혁명의 시대, 현재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역사, 문화를 종횡무진하며 한족, 몽골족, 여진족, 후이족(回族) 등 여러 민족의 대립과 융합의 역사가 깊고 넓은 중국의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직접 체험한 문화혁명 시기의 풍경은 특히 생생하다. 베이징의 오랜 서민문화를 엿볼 수 있는 뒷골목 후퉁(胡同), 공산당 간부들의 화려한 연회, ‘마오쩌둥 어록’을 반드시 외워야 했던 1970년대 거민식당 등 외국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현장들을 통해 마오 시대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의 눈에 비친 문화혁명은 암흑기였다. 맛의 획일화가 진행됐고 민영 음식점은 금지됐으며 외식문화가 사라졌다. 이념이 맛을 지배한 시기였다. 책의 마지막 장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은 루게릭병을 앓다 지난해 타계한 저자가 한국어판을 위해 썼다고 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