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스승에게 바친 '그 시절 이야기'
미시경제학과 재정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다음달 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65·사진)의 제자들이 펴낸 문집 ‘꽃보다 제자(문우사)’가 대학가에서 화제다. 문집 발간에는 이 교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경제학계 인사 27명이 참여했다.

서울대 교수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 국장(80학번)은 문집에서 “(이 교수에게) 몇 달간 쓴 초고를 넘기면 1주일 새 반으로 줄여진 원고를 되돌려 받았다”며 “대학원생이 박사 지도를 받는 식으로 교과서를 썼는데 공저자라고 인세의 반을 주셨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교수 시절 이 교수와 경제학 교과서의 베스트셀러 ‘경제학원론’을 공동 집필했다.

학계에서 이 교수의 애제자로 잘 알려진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87학번)는 “1학년 때 ‘내 수업에서 학점을 잘 받고도 인사하러 안 오는 학생이 있다’는 얘기에 찾아뵙기 시작했다”며 “이 교수만큼 모든 제자에게 애정을 가진 분은 정말 드물다”고 썼다.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94학번)은 “‘고시공부는 바보스러운 행동’이라며 ‘죽은 지식을 암기하고 선택의 폭을 줄여버리는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류두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전기공학부 99학번)는 “이 교수의 수업을 듣고 감명을 받아 과감하게 경제학으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고 적었다.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82학번)는 “평소 아카데미아에 점잖게 계시며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꺼리던 교수님이 4대강 사업에 강한 반대의견을 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정책담당자 입장에서 적절한 정책 선택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남겼다.

문집발간에 대해 이 교수는 “번잡스럽지 않게 퇴임하고 싶어 정년기념 논문집을 사양했는데 대신 제자들이 문집을 펴냈다”며 “글 속에 담긴 제자들과의 인연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