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으로 비판적 여론이 들끓고 있는 요즘, 검찰의 칼끝은 이른바 ‘칼피아’로 향하고 있다. 대한항공(칼)과 국토교통부의 유착관계를 파헤치겠다는 것.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은 올해도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비판할 것은 하되, 공직 사회를 싸잡아서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시각이 많다. 대학교수 출신으로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 등을 지낸 박종구 초당대 총장 내정자. 그는 “일부 부패 관료의 사례로 공무원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예나 지금이나 애국심과 소명의식으로 공직생활에 임하는 관료가 훨씬 많으며 오히려 이들을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예산 통제를 받는 급여나 제한된 인원만 가능한 승진 인사 등으로는 공직생활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기 힘든 게 현실인 만큼 공무원들의 자긍심을 쉽게 짓밟아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경제 살리려면 공무원 氣도 살려라] "막힌 곳 뚫어주고 성과는 보상하라"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삼성전자 삼성증권 KDB금융지주 중역을 거쳐 지난해부터 전주페이퍼를 이끌고 있는 주우식 부회장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요즘 후배 관료들을 만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기가 죽어있다”며 “지금처럼 산하단체나 민간으로 나갈 길이 차단되면 앞으로 좋은 인재들이 공직을 기피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 부회장은 특히 관가의 고급 두뇌들이 민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도 우수공직자 영입 수요 많아…후배 관료들 생각보다 氣 많이 죽어
좋은 인재들 공직 기피할까 걱정…연공서열 인사 혁파, 파격 보상을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제 식구 편든다’는 말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민간기업도 우수 공무원에 대한 영입 수요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책흐름에 밝고 전체를 보는 시야가 있거든요.”

옛 산업자원부 출신으로 다우기술 부사장을 거쳐 지금은 키움증권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권용원 사장도 비슷하게 얘기했다. 그는 “민간으로의 출구를 무조건 막는 게 옳은지 따져봐야 한다”며 “진출 자체를 봉쇄하지 말고 사후에 문제가 생기면 강력 처벌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3년간 허송세월하나”

하지만 주우식 부회장과 권 사장의 이 같은 바람은 당장 현실화하기 어렵다. 오는 3월31일부터 시행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일명 ‘관피아 방지법안’이 퇴직공무원에 대한 재취업 규제를 대폭 강화해놨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공무원의 취업 제한 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고 취업 제한 민간업체도 3960곳에서 총 1만3466곳으로 불어난다. 공직 재임기간 중 ‘소속 기관의 업무와 관련 있는’ 민간기업으로의 이직은 퇴직 후 3년간 꿈도 꿀 수 없다.

당장 이 문제가 각 부처 1, 2급 간부들에게는 발등의 불이다. 홍순직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1975년 상공부를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경험한 뒤 1995년 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15년간 주요 보직을 거치면서 민·관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는 취업 제한 기간인 3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에 동의했다. “한창 일을 해야 할 50대 초·중반에 옷을 벗고 나와 그다지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로펌 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죠.” 다만 ‘관피아’에 대한 비판적 여론의 산물인 공직자윤리법을 다시 개정하기는 어려운 현실인 만큼 퇴직 관료들을 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격적 포상제도 도입해야”

홍 회장은 구체적으로 ‘파견 리턴’ 같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앙부처 공무원에 대한 수요를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나 국공립대, 한국으로부터 ‘경제개발’ ‘전자정부 구축’ 등의 경험을 전수받고 싶어하는 해외 정부에 일정 기간 파견을 하면 관가의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요처와의 인력활용 시너지도 높일 수 있다는 것. “정책현장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퇴직 공무원들을 개발도상국 등에 파견하거나 대학에서 현실 경제에 대한 강의를 맡기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상필벌을 보다 엄격히 하되, 특히 성과에 대한 파격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공서열식 승진·보직 인사 관행을 혁파해야 양질의 공무원들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열 수 있다는 것. 인사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야근, 주말특근에 허덕이는 공무원들의 부족한 휴식 인프라도 개선해야 한다. 김종갑 지멘스코리아 회장. 행정고시 17회로 산업자원부 차관을 거쳐 하이닉스반도체를 회생시킨 데 이어 2011년부터 지멘스코리아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제 젊은 공무원들도 삶의 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거 선배들이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는 얘기는 그들에게 무의미하다”며 “정기휴가를 민간기업 수준으로 늘리고 성과를 내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포상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일반직 공무원의 평균 휴가사용 일수는 9.6일로 법정 휴가의 절반도 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행정 균형 무너지면 안 돼”

헌법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직업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입김도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회의 입법권력이 갈수록 비대해지는 상황에서 관료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도 비례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법령이 아닌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을 입안·집행하고 인사철마다 정치권에 줄대기를 할 경우 입법·행정의 헌법적 균형은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다.

감사원이 사후적 잣대로 과거의 정책을 평가하고 제재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차관급인 무역위원회 위원장직을 겸하고 있는 홍순직 회장의 얘기다. “국회나 감사원이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문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감사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특히 국회와 감사원이 정책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공무원 견제’ 시각도 여전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파견리턴제, 정책감사 면책 확대 등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퇴직한 고위공무원을 다른 곳에 파견한 뒤 본부로 복귀시키거나 다른 공공기관장 자리로 보내는 것은 자칫 과거 ‘관피아 돌려막기’의 악습을 재연할 우려가 있다”며 “전문성이 있다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많다”고 말했다.

또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이라고 정권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공무원이) 국가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 조항도 큰 틀에서 보면 그 대상이 특정 정부가 아닌 전체 국민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문제가 있는 정책엔 반대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면책 확대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세종=김주완/김재후/마지혜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