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림 싸다"…외국인, 홍콩서 120억 베팅
지난 24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의 ‘제14회 홍콩 경매’에서 박수근의 ‘고목과 여인’은 응찰자들의 경합 끝에 507만홍콩달러(약 7억원)에 낙찰됐다. 앞서 22일 김환기의 1958년작 ‘무제’(60×81㎝)는 크리스티 ‘아시아 근현대미술’ 경매에서 추정가(2억5000만원)의 다섯 배가량인 784만홍콩달러(약 11억2000만원)에 팔려 한국 미술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11억2000만원. 김환기 화백의 ‘무제’
11억2000만원. 김환기 화백의 ‘무제’
박수근 김환기 백남준 이우환 정상화 등 쟁쟁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홍콩 가을 경매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미술품 경매회사 홍콩크리스티와 서울옥션, K옥션은 지난 22~24일 홍콩에서 잇달아 경매를 열고 한국 미술품 66점을 팔아 120억원의 자금을 벌어들였다.

서울옥션은 24일 연 경매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 40점 중 29점(낙찰률 73%·낙찰액 55억원)을 거래했고, 홍콩크리스티는 22~23일 경매에서 총 31점의 한국 작품을 내보인 가운데 28점을 팔아 낙찰률 90%(낙찰총액 66억원)를 기록했다. K옥션은 22일 연합 경매를 통해 한국미술품 9점(약 10억원)을 판매했다.

이는 지난 5월 3개 경매회사의 홍콩경매(약 60억원) 때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액수다. 경매된 대부분의 작품은 추정가 범위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렸다. 한국 현대미술이 아시아 시장에서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학준 서울옥션 홍콩법인 대표는 “아시아 지역 컬렉터들이 그동안 조정을 받은 한국 그림값이 바닥을 찍었다고 판단해 본격적으로 ‘입질’을 시작한 것 같다”며 “이는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한국 미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그림 싸다"…외국인, 홍콩서 120억 베팅
이번 경매에서는 한국 단색화 작품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이우환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는 544만홍콩달러(약 7억8000만원), 1985년작 ‘동풍’은 604만홍콩달러(약 8억6000만원)에 각각 팔렸다.

정상화의 ‘무제 82-9-30’은 경매 추정가의 세 배에 달하는 277만2000홍콩달러(약 3억9700만원)에 중국인 컬렉터에게 팔려 그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정 화백의 또 다른 작품 ‘무제 96-5-2’도 160만홍콩달러(약 2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윤형근의 ‘엄버 블루(Umber-Blue)’(2억1200만원)와 ‘무제’(1억4900만원), 박서보의 ‘묘법’(7000만원), ‘접합 84-80’(1억800만원) 등도 중국과 홍콩 컬렉터의 치열한 경합 끝에 고가에 팔렸다.

홍콩 시장에 진출한 ‘국민 화가’ 박수근을 비롯해 남관 백남준 김환기 이성자 김창열 전광영 노상균 강형구 김동유 김덕용 최영걸 최소영 권기수 등 일부 작가의 작품도 강세를 보이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한국 화단의 거장 김환기의 1970년작 점화 ‘25-V-70 #173’은 731만4500홍콩달러(약 10억4900만원), 김창열의 물방울(5억7800만원), 백남준의 ‘마샬 맥루한’은 412만홍콩달러(약 5억9000만원)에 판매됐다. 남관의 ‘회상’(3억5000만원), 이성자의 ‘한여름밤’(1억7700만원), 강형구의 ‘핑크빛 달리’(1억4000만원), 한지 조각가 전광영의 집합(9000만원)도 줄줄이 낙찰됐다.

홍콩 경매 현장을 지켜본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장은 “한국 작가는 작품성이 우수하고 가격도 저렴해 해외 컬렉터들에게 투자를 자극하고 있다”며 “이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