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증시 가격제한폭 없애자
정부가 이달 중 주식시장 발전방안을 내놓을 것이라 한다. 가격제한폭 확대, 기업배당 확대와 액면분할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진한 증시를 살려보겠다는 의도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간의 증시 대책이라는 게 오히려 규제를 신설하고 시장을 더 죽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르면 내년 4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가격제한폭 확대 문제부터 그렇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큰 선심이라도 쓰듯, 코스피 코스닥 모두 일시에 30%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다. 왜 30%인지, 상하한가가 왜 아직 필요한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 현재 15%인 가격제한폭에 적당히 두 배를 곱했다면 그야말로 주먹구구다.

시세조종 등 역기능 더 많아

가격제한폭 제도가 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상한가 굳히기’와 같은 시세조종에 동원되는 등 역기능이 적잖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전문가 중에는 “가격제한폭 때문에 공정가격을 형성하는 시장 기능이 왜곡되고 투자자가 현혹되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본 대만 한국 등 몇몇 아시아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이 채택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제도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격제한폭이 없어지면 마치 증시가 하루 아침에 어떻게 되기라도 할 듯 걱정한다. 그런 논리라면 미국 유럽의 웬만한 증시는 늘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가격제한폭이 있는 한국 증시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변동성이 큰 시장 중 하나다.

시장에는 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 등 가격 급변을 방지하기 위한 별도의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 9월부터는 종목별 변동성 완화장치까지 추가로 도입돼 시행 중이다. 굳이 가격제한폭이라는 규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금융당국은 적당히 상하한가 폭을 확대하며 규제를 유지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0%로 확대될 경우 변동성은 더 높아지고 작전세력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불필요한 규제 투자자 보호 역행

증시가 지금처럼 침체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무분별한 규제 탓이 크다. 무슨 사고라도 터지면 규제부터 강화해왔던 당국이다. 2010년 옵션쇼크가 터지자 옵션 거래 단위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5배나 올려 버렸다. 옵션은 위험하니 가급적 거래하지 말라며 진입장벽만 높인 것이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 엉뚱한 규제는 이후 증시침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옵션의 유동성이 급격히 떨어졌고 이는 차익거래와 헤지거래 등 현물 연계거래까지 급속하게 위축시켰다. 올 상반기 주식거래대금이 8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6월엔 ‘파생시장 발전방안’이라며 개인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여 놨다.

그런 정부가 또 주식시장발전 방안을 내놓는다고 한다. 가격제한폭을 확대한다고 생색내며 또 어떤 규제를 끼워 넣을지 모른다. 명분은 늘 투자자 보호다. 물론 이는 중요하다. 하지만 가격제한폭이 투자자를 보호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개인투자자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게 능사도 아니다. 무조건 막고 규제하는 데서 벗어나 증시 대책도 이제 좀 세련될 때가 되지 않았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