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위기 예견한 폴 크루그먼 "정부주도 성장은 한계 부딪힌다"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이른바 ‘아시아 네 마리 용’이 승승장구하던 1990년대 초반 ‘아시아 경제 기적의 신화’란 논문을 발표해 “잔치는 곧 끝난다”고 했던 사람이 미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사진) 프린스턴대 교수였다.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정부 주도 성장모델을 칭찬하고 있을 때, 전혀 다른 주장을 한 그의 논문은 1997년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한국 등 아시아 성장모델은 요소투입형이었다. 요소투입에 한계가 나타나면 곧 침체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960년대 22%, 1980년대 초반까지는 30%, 그 이후에는 37%에 달했다. 투자와 연관되는 저축률도 1961년 3%에 불과했지만, 지속적으로 상승해 1988년에는 38%, 그 이후에는 36%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저축과 투자다.

또 다른 생산요소인 노동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1960년대 초반 대부분의 노동력이 농업에 종사했고 농촌의 생산성이 제로(0)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노동력의 40~50%가 실질적인 실업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실업률은 2.5%로 완전고용에 가까웠다. 즉 무제한의 노동력 공급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저축과 투자를 더 늘리기 어렵게 되고 노동력 투입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요소투입에 한계가 나타난 것이다.

성장 견인 요인으로 요소투입 이외에 효율성 향상이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 경제 성장의 80%는 앞서 말한 대량의 요소투입에 의한 성장이었다. 효율성 향상에 따른 성장은 20%에 불과했다. 반면 선진국들은 성장의 3분의 2가량을 효율성 제고를 통해 이뤄낸다. 한국도 효율성을 높여 성장을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효율성 향상이라는 성장 요인이 아직 남아 있다는 면에서 한국 경제에는 고성장의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