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상대로 목숨 걸고 싸우는 건 기업인뿐"
“한국은 1980년대 말 ‘아시아의 용’으로 세계의 극찬을 받다가 딱 10년 만에 외환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지금도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발전 모델로 각광받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경제팀을 이끈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사진)은 12일 우리 경제에 대해 쓴소리를 담은 ‘덫에 걸린 한국 경제’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고령화, 복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양극화, 통일, 세계 경제의 판도 변화, 기상이변 등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상대로 목숨 걸고 싸우는 건 기업인뿐"
그는 이 책에서 각종 현안에 대해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가파르게 늘어가는 국가 부채에 대해 “과거에는 나라가 전쟁으로 망했지만 지금은 국가 부채로 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 포퓰리즘을 손보지 않으면 나라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경고였다.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어설픈 경제민주화로는 중소기업과 서민만 피해를 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대기업이 밖(해외)으로 튀면 남는 건 중소기업과 일자리 없는 서민뿐”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반(反)기업 정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판·검사나 정치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은 자기들끼리만 경쟁하기 때문에 솔직히 편하게 사는 편”이라며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은 기업인들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업과 기업인이 마음놓고 뛸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띈다. 과소비 억제 정책은 ‘엉터리 정책의 종합판’으로, 무상복지 시리즈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로, 대학생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선 ‘청년 실업을 늘리는 경제 왜곡의 주범’이라고 비판한 게 단적인 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는 국가 경영 시스템의 변화를 꼽았다. 김 전 실장은 “과거에는 국가 경영의 두뇌 역할을 관료들이 맡아 국가 미래를 생각하고 정책을 펴나갔지만 지금은 ‘변양호 신드롬’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힘들고, 그 역할도 대부분 국회로 넘어갔다”며 “두뇌가 병든 사회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꼬집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국회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스웨덴을 반면교사이자 모범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전 실장은 “스웨덴은 1990년 초 완전히 망가졌다가 다시 살아났다”며 “복지 제도를 개선하고 세금을 대폭 낮춰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직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책을 썼는데 써놓고 보니 부족한 점이 많다”며 “이 책이 한국 경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