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회사에 다니는 송희원 씨(33)는 요즘 카카오톡 PC버전에 빠졌다. 회사에 출근해 컴퓨터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카톡 PC버전을 켜는 일이다. 그는 “키보드로 훨씬 빠르고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며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아도 돼 주변의 눈치를 살필 일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카카오톡 PC버전이 추첨을 통해 선정된 1만명에게 공개됐다. 기능은 다른 메신저에 비해 미흡하지만 쓸만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카카오톡이 PC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보다 다양한 콘텐츠가 소비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단순하고 가벼운 카톡 PC버전

카카오는 현재 1만명을 대상으로 카카오톡 PC버전의 비공개 시범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각종 프로그램 오류를 수정하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5월 중 정식 버전을 내놓을 계획이다.

PC버전은 아주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기능이 많지 않은 만큼 프로그램 동작도 가볍다. 카톡 PC버전을 이용하기 위해선 우선 이메일 형태로 된 카카오 계정이 있어야 하며, 로그인 화면에서 이 계정과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PC버전에 로그인하면 모바일 앱에 ‘PC버전에 로그인했습니다’란 메시지가 전달된다. 누군가 다른 컴퓨터에서 자신의 계정으로 몰래 카톡에 접속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초기 화면은 모바일 카카오톡과 같다. 친구 목록이 프로필 사진과 상태메시지와 함께 뜬다. 프로필 사진을 누르면 크게 확대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모바일과 다르다. 프로필 사진을 다운로드 받을 수는 없다. 채팅방은 기본적인 기능만 지원한다. 예를 들어 이모티콘은 무료로 기본 제공되는 것만 보낼 수 있다. 모바일에서 유료 이모티콘을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PC버전에서 쓸 수 없다. 사진도 한 번에 10장까지, 하나당 9메가바이트(MB)까지만 보낼 수 있다. 음성통화 서비스인 ‘보이스톡’은 정식 서비스 때 추가될 예정이다.

하지만 받은 사진을 컴퓨터에 바로 저장할 수 있고 대화 내용도 텍스트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는 등 편리한 점도 많다. 특히 채팅창을 여러 개 띄워놓을 수 있어 여러 사람과 대화할 때 좋다. 모바일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PC버전, 우리가 더 좋아”

다음 NHN 등 다른 메신저 업체들은 카카오톡을 계기로 PC버전 메신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반기는 눈치다. 카톡 PC버전이 아직 기능이 미흡한 이때에 자신들의 메신저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음 마이피플은 국내 모바일 메신저 중에서 가장 빠른 2011년에 이미 PC버전을 내놓았다. 카톡 PC버전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체제(OS)에서만 작동하는 것과 달리 마이피플은 윈도, 맥, 리눅스에서 모두 돌아간다. 최대 1기가바이트(GB)의 사진을 전송할 수 있고, 음성 및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지난해 3월 PC버전을 출시한 NHN 라인은 윈도와 맥을 지원하며, 무료 음성 통화 기능을 제공한다. 파일은 최대 300MB까지 전송할 수 있다.

점유율 80%로 PC메신저 시장 최강자인 SK컴즈의 네이트온도 카톡 PC버전과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카톡과 달리 친구를 그룹별로 관리할 수 있고, 무제한 용량으로 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등 업무용 메신저로서 최적이라는 설명이다. 김영목 SK컴즈 서비스1본부장은 “카톡은 개인적인 대화에 쓰이고 네이트온은 주로 업무용으로 많이 쓰인다”며 “카톡 PC버전 출시로 네이트온이 받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를 위한 포석?

카카오는 카톡 PC버전 출시에 대해 “사용자들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어 편의를 위해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사용자 편의를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TV 등을 가리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멀티 플랫폼 시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카오가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카톡 PC버전은 콘텐츠 소비가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출발선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조만간 카카오가 선보일 콘텐츠 장터인 카카오페이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며 “콘텐츠 제작과 판매, 소비가 활발히 이뤄지기에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