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가 10여년 전 삼성 미국 가전부문 대표를 맡아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유통채널을 구축하려고 뛰어다니던 시절. 그는 콧대 높은 미국 바이어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즉석으로 와인 시음회를 제안했다. 바이어들이 좋아한다는 300달러짜리 ‘몬다비 리저브’와 70~80달러인 ‘몬다비’의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시음한 바이어들 중 누구도 어느 것이 몬다비 리저브인지 알아맞히지 못했다.

시음회가 끝난 뒤 그는 몬다비를 삼성, 몬다비 리저브를 소니에 비유했다. “두 와인의 수준 차는 없어 보이는데 가격은 리저브가 훨씬 높다”며 “이는 삼성·소니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바이어들은 식사와 곁들인 와인을 주문할 때 모두 “삼성(몬다비)을 달라”고 했다.

《적의 칼로 싸워라》에서 이 교수는 이 일화를 통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퍼시브드 밸류)와 실질 가치(리얼 밸류)의 개념을 설명한다. 이어 “두 가치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브랜드”이며 “브랜드 전략이 중요하지만 제품의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가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팀장·미국 가전부문 대표, 소니코리아 사장, 레인콤 대표 등을 거치며 33년간 비즈니스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미국 와튼스쿨 MBA(경영학석사), 한양대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습득한 경영이론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경영지침서다. 다양한 비즈니스를 경험하며 겪었던 생생한 실제 사례와 경영 이론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 무엇을 어떻게 왜 경영해야 하는지를 24가지 방법론을 통해 풀어냈다.

저자는 창조와 창의, 차별화, 혁신 등 비즈니스맨과 기업에 요구되는 경쟁력의 요건을 꿰뚫는 하나의 본질을 ‘다름’으로 규정한다. 창조와 창의란 기존과는 다른 것, 차별화란 남과 다른 것, 혁신은 지금까지와 다른 것을 뜻하며 무엇과 누구와 언제와 다르냐에 따라 용어가 달라질 뿐 결국 중요한 것은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남과 달라져 탁월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 그가 제시하는 화두가 ‘적의 칼로 싸우라’이다. 시장은 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승자를 갈구한다. 이에 많은 비즈니스맨과 기업이 새로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새로움이란 ‘세상에 없던 것’이라기보다 ‘세상에 있던 것을 새롭게 활용하는 것’에 가깝다. 시장과 경쟁사의 전략 등 세상에 있던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해 새로움을 탄생시키고, 남과 다른 가치를 창출하라는 의미다.

애플의 아이폰을 보자. 아이팟은 애플이 창조해낸 완전히 새로운 제품은 아니다. 1999년 말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를 세상에 선보인 주인공은 소니였다. 애플은 아이팟이라는 기기에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구축, 자신의 방식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했을 뿐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당신은 얼마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든 제품이든 기업이든 가격을 올릴 수 있는 길은 남다른 가치를 만드는 것. 이 책에 담긴 방법과 메시지도 그런 가치를 이루는 데 쓰이는 ‘적의 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