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보호하자는 말을 자주 듣지만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먹고 살기도 바쁘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인간이 스스로를 지구에 사는 하나의 생물체가 아닌 유일한 지배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책 《인간 이력서》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독일어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이 책에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약 200만년의 ‘인간 이력서’를 써내려 간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우주 안의 ‘점’인 지구의 모습과, 그 안 생명체의 작은 일부인 인간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된다. 현대인은 어느날 갑자기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된 게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은 놀랍지만 물리학적으로 봤을 때 인류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시작은 미약했다. 수백만년 전, 그러니까 지구사(地球史)로 본다면 최근 몇 분 전에, 동아프리카에서 평균 이상으로 똑똑한 원숭이 수백 마리가 새로운 종으로 도약했다.’

수백만년의 시간 동안 인간은 모든 것을 굴복시켰다. 더위, 추위, 바다, 하늘, 맹수, 병균 등. 인간은 오만해졌다. 하지만 인간이 ‘정복’했다고 생각하는 이 지구는 실은 전혀 안전하지 않은 곳이다. 지표면에서 겨우 9㎞ 깊이에는 꿀처럼 끈적거리는 300도의 암석이 끓고 있다. 이 얇은 껍질 위에 인간은 아파트와 마천루를 건설했다. 1923년 지진으로 도쿄에서는 7만4000명이 죽었고 201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인간은 재앙에서 배우기를 거절한다.

그러나 우주로 시야를 넓혀 보면 그나마 지구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는 역설 또한 사실이다. 대기는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운석의 폭격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한다. 목성은 지구보다 300배 무거운 질량으로 운석을 흡수해 준다. 목성은 1994년 시속 2만2000㎞의 속도로 돌진한 혜성의 공격을 받았다. 금성은 표면 온도가 460도에 이르러 인간이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지구를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위대한 ‘진보’를 이뤘다. 동물과 병균을 정복하고 바다와 하늘을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불로 마녀를 화형시켰고, 히로시마에는 핵무기를 투하했으며 베트남을 네이팜탄의 화염으로 태워버렸다.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농업의 시작은 어떤가. 저자에 따르면 농부는 문명을 만든 위대한 사람들이자 ‘자연 파괴자’다. 농업을 시작하며 인간은 숲을 태우고 엄청난 양의 나무를 벴다. 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지구에 적당한 인구는 500만~1000만명 정도다. 엄밀히 말하면 ‘자연’은 농업이 시작된 8000년 전에 이미 사라졌다. 수렵생활에서 인간은 어떻게든 함께 살아갈 수 있었지만 농경이 시작된 이후 흉년이 들면 그저 굶어 죽거나 이웃에게서 빼앗았다. 전쟁이 시작됐고 노예가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는 농업을 찬양한다. 지금처럼 수십억명의 인구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며, 지금도 주고 있다.

저자는 문명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대로는 인간이 지구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바보들의 배에 함께 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거나 이런 행보를 중단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수백만년에 걸친 인간의 여정을 464쪽 안에 담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저자는 이를 해낸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과 전개,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내용들, 이로 인한 효율적인 정보 전달 덕분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기는 희망이 없지는 않다.

‘그들은 언제나 생존 방법을 발명했다. 위협에 처한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