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인 단어로 시대의 화두를 던지는 것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화법이라면 아들 이재용 사장은 말을 한번쯤 곱씹어 보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이 사장이 최근 경영 보폭을 넓히면서 그의 독특한 화법도 덩달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언뜻 의미없는 농담처럼 들리지만 속뜻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아 진중한 이 사장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이 사장은 31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미국의 태양광ㆍ광통신업체인 '엠코어'의 로벤 리차드 최고경영자(CEO)와 조찬 회동을 가졌다.

이들의 만남에서 정확히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이 태양광을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된 논의가 나왔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이 사장은 회동을 마치고 8시40분께 리차드 CEO와 나란히 사옥 로비로 걸어나오며 "개인적 친분도 있고 사업상 얘기도 있어 만났다"고 짧게 말했다.

기자가 리차드 CEO에게 질문을 하려고 하자 이 사장은 "분명히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려 할 것" 이라며 "'그럴 경우 '애플'이라고 말하라"고 귀띔했다.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 일 수도 있지만 삼성과 애플이 전 세계에서 치열한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간과할 수만은 없는 얘기다. 애플과의 소송이 삼성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이자 동시에 글로벌 기업 시장에서도 주목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사장은 앞서 르노삼성의 지분매각설과 관련해서도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을 만났느냐'는 질문에 "좋은 얘기면 하겠지만 곤란해지는 쪽이 있어 말하기 어렵다"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여지를 남겨뒀다.

지난 5월 프로야구 시즌 초반, 삼성라이온즈가 부진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때 이 사장은 당시 잠실야구장을 찾아 류중일 감독에게 "부담갖지 말고 '삼성'다운 야구를 해라"고 조언했다.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긴 잔소리가 아닌 툭 던지는 말 속에 핵심이 담긴 표현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 사장은 꼭 필요한 말 외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 이라며 "이 회장과 마찬가지로 '경청'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겉으로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늘 웃고 있는 때가 많아 항상 밝아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이날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 대 SK의 경기를 직접 관람할 예정이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