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에 도입된 사회복지는 주로 백인 유권자를 위한 것이었다. 농장주와 주택 소유자, 은퇴자에 대한 연방의 지원은 백인 공동체에 이로웠다. 그런데 1960년대 민권운동과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출현으로 연방의 혜택은 점점 소수집단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에 대한 정치적 반동으로 많은 백인 유권자들은 정부의 지도적 역할에 등을 돌리고 작은 정부를 지향한 공화당의 몰표 집단으로 떠올랐다.

히스패닉계 이민자의 급증은 미국의 정치적 인종적 분열의 또 다른 원인이었다. 주로 히스패닉계 학생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추가 부과되던 재산세에 대한 백인사회의 반발이 일어났다. 이는 전국적인 조세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낙태 합법화는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이런 수많은 가치의 충돌로 미국은 지금까지 팽팽히 대립해왔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인을 단결시켜 경제정책의 바탕이 돼야 하는 중요한 가치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적 분열에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해왔다”고 주장한다. 미국 경제 위기의 뿌리에는 도덕적 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의 역할에 대한 시민적 미덕이 쇠퇴하면서 경제 회복은 더욱 어려운 일이 돼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미국보다는 세계 다른 여러 나라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는 미국으로 초점을 돌렸다. 그는 《문명의 대가》에서 미국의 경제는 갈수록 사회의 극소수만을 위해 봉사하고 정치인 기업인 등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좇으며 사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고 말한다. 막대한 군비 예산, 로비스트들에 의한 굴종, 무모한 감세, 유례없는 재정적자로 이런 상황이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저자는 미국 경제 위기의 원인을 정부 역할의 축소에서도 찾는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국제 환율체계의 붕괴로 미국 경제는 위기를 맞았다. 로널드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우파는 미국이 악화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레이건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1980년대부터 정부지출 축소, 감세, 민영화를 단행했다. 금융, 석유, 환경 등 많은 부문에서 탈규제가 빈부 격차, 금융 불안정성, 연구·개발(R&D) 투자 축소를 가져왔다는 말이다.

그럼 미국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일까. 저자는 새로운 미국 경제를 위한 실천 방법과 윤리적인 기초를 제안한다.

먼저 개개인이 스스로의 행복에 대한 원천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광고와 홍보가 조장하는 가짜 욕구에 휘둘리지 말고 여가와 저축, 온정적 기부와 같은 동정적 욕망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저자는 “미국의 일자리 위기는 거시경제의 실패가 아니라 노동시장 자체의 붕괴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경기 부양을 통해 수요를 진작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숙련도를 높이고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 이를 위해 고교 졸업을 보편화하고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등 교육 수준의 향상이 필요하다. 또 노동의 질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고 인터넷 활용에 밝으며 정치적으로 새로운 참여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새천년 세대의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다양한 구성원들이다. 타 인종과의 관계 및 인종 간의 결혼에 대해 우호적이다. 이들은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문화 전쟁에 의해 분열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