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가슴 속에 품고 있다는 사표…"정말 있기는 한거니?"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살기로.”

매주 일요일 개그콘서트에서 ‘용감한 녀석들’은 외친다. 그러나 ‘370% 리얼’ 사무실 안은 함성과 열정이 아닌 한숨과 걱정뿐. 죽기살기로 애쓰기보다는 포기하는 게 때론 더 마음이 편하다. 3단 경청자세로 불만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침을 튀겨가며 용감함을 보여달라고 독려하는 이도 없다.

상사에 밟히고 후배에 치이는 직장인들에게 그나마 와닿는 가사. “세상은 말하지. 안 될 놈은 안 돼.” 포기하는 게 편하고, 즐기라는 말보다는 피하라는 말에 귀가 더 솔깃해지는 김 과장, 일찍 일어나는 새는 더 피곤할 뿐이고 고생 끝에 결국 골병만 든다고 믿는 이 대리. 이제…너희의 용감함을 보여~춰!

◆“때려치겠다”는 네 말이 더 스트레스

5년차 직장인인 조 대리는 ‘퇴사하겠다’는 말을 달고 산다. 1년차 시절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회사 생활이 힘든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은 뒤, 결론은 언제나 퇴사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5년이 넘도록 퇴사는커녕 상사에게 대든 적도 없다. 죽어나는 것은 모든 하소연을 들어줘야 하는 동료와 후배들. 투덜거리지 말고 말없이 사표 내는 모습을 보면 동정이라도 할 텐데.

조 대리 주변 사람들은 얘기하고 싶다. “헤이, 브라더. 가슴 속에 늘 품고 있다는 사표, 실제 존재하기는 한 거니. 네가 바로 우리의 스트레스 메이커야. 때려칠 용기 없으면 ‘퇴사하겠다’는 말을 퇴사시켜.”

◆10분 거리 회사 오는데 맨날 100분

회사생활 7년 만에 처음으로 부사수를 받은 김 대리에게 귀여운 후배가 생겼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1주일에 몇 번씩 지각을 밥 먹듯 하는 후배 탓에 김 대리까지 상사들에게 꾸지람을 들을 지경이다.

지각의 이유도 다양하다. 늦잠을 잤다, 차가 밀렸다, 사고가 났다, 사무실 앞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몸이 아팠다, 부모님이 아프셨다에 이어 이번에는 키우는 강아지가 아팠다는 것까지. “10분 거리 회사 오는데 맨날 100분이 걸리냐. 그렇게 매일 늦을 거면 영영 출근하지마. 세상은 말하지. 안 될 놈은 안돼.”

◆신발끈이 무척 긴 이 차장

“배고파, 밥 사달라는 말이야. 목 말라, 술 사달라는 말이야. 신발 끈이 풀렸네, 돈 안 내겠다는 말이야. 현금이 없네, 돈 안 갚겠다는 말이야. ”

중견 방산업체에 다니는 이 차장은 궁상 맞을 정도로 짠돌이다. 캐릭터의 진가는 술자리에서 여지없이 발휘된다. 그는 후배들과의 술 자리에서조차도 단 한번도 제대로 계산한 적이 없다. 계산할 때가 되면 화장실을 가거나, 통화 중이거나, 심지어 신발끈을 5분간 고쳐맨 적도 있었다.

그런 이 차장이 “오늘은 내가 쏜다”고 나섰으니, 다들 삼겹살집에 모여들었다. 푸짐하게 먹은 뒤 계산대에 선 이 차장이 느닷없이 후배에게 하는 말. “아, 카드를 안 갖고 왔네. 일단 네가 계산해라, 내일 돈 줄게.” 후배는 그말을 철썩같이 믿었건만, 다음날 이 차장은 필름이 끊겼다며 전혀 기억을 못하는데…. 물론 돈 달라는 후배 말에 수긍을 못하겠다며 “에이~ 그냥 내가 담에 크게 살 게”라며 스리슬쩍 넘어가는데…. “공짜 좋아하는 이 차장, 조만간 될거야!!”

◆소통을 가장한 고문

전자업체에 다니는 이 팀장은 한동안 ‘소통’을 소재로 한 책들을 읽고 난 후론 늘 회의 때마다 ‘소통’을 부르짖는다. “팀워크의 기본은 소통”이라며 ‘소통의 시간’을 자주 갖는다. 매주 한 번 정도는 팀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눠 팀간 벽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매주 그 소통의 시간 3분의 2는 팀장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전부다. 팀장의 젊은 시절, 팀장의 가족 이야기, 팀장의 리더십, 팀장의 군대 시절, 팀장의 첫사랑…. 혹시나 젊은 사원이 얘기라도 하려고 하면 “가만 있어보게”라며 제동이 들어온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초등학교 조회시간 생각 나게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너한테는 소통이지만 우리에겐 고문이니까.”

◆네 주제나 알아

얼마 전 출산 휴가를 다녀온 최 과장은 요즘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프리젠테이션을 어떻게 할까 때문이 아니라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못 잡아서다. 입사 이후 똑 부러지는 말투 때문에 ‘프레젠테이션의 여왕’이라고도 불렸던 그녀지만 부장의 ‘엄격한 기준’ 탓에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부장의 기준이란 오로지 외모. 젊고 예쁘고 날씬한 사람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반응이 좋더라는 것이다. 최 과장은 김 부장에게 톡 까놓고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용감무쌍의 절정이구먼. 누가 누구 얼굴을 평가해. 네 기준대로면 넌 평생 프레젠테이션 못한다. 알아?”

◆축의금의 셈법

별로 친하지 않은 직장 상사 결혼식 청첩장을 받게 된 김 대리. 결혼식에 가지 않더라도 청첩장까지 받았는데 축의금까지 ‘생까기’는 쉽지 않다. 부서가 달라 매일 얼굴을 볼 일은 없지만 어쩌다 있는 부서 간 회의에서라도 마주칠 경우 다소 민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리의 고민이 시작된다. ‘3만원을 할까, 5만원을 할까.’ 김 대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우리의 용감함을 보여주지. “남의 축의금 고민할 필요 없어. 어차피 네가 낸 만큼 돌려 받을 테니. 네가 받고 싶은 만큼 축의금 내라.”

윤정현/김일규/강경민/강영연 /정소람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