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우리가 맺은 협정에 대해 미국이 반격할 겁니다. 솔직히 우리는 달러 기반의 무역 체계에서 명령을 해대는 미국에 신물이 납니다. 아직 달러를 대체할 준비는 안 돼 있습니다. 하지만 금은 항상 양화였습니다. 세계가 금본위제 형태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러시아 관료는 이렇게 말하고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비밀리에 사들였다. 달러 기축통화 시대에 염증을 느끼는 국가들이 이를 해체하려 시도하는 것. 물론 현실의 일은 아니다. 미 국방부가 2009년 3월 전문가를 모아 실시한 모의 금융 세계대전의 한 장면이다.

《커런시 워》는 이 가상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의 통화제도 분석가이자 투자은행가인 제임스 리카즈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 통화 전쟁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세계 통화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미 중앙은행(Fed)은 두 차례 ‘양적완화’를 단행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저자는 이 정책이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자산 가격에 버블이 끼었다 빠지면 또다시 위기가 올 수 있는 데다, 달러 발행으로 중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브라질 주식시장에 버블이 생기는 등 주변국에 영향을 준다. 또 15조달러가 넘는 미국 부채가 평가절하돼 채권국이 회수하는 돈은 실질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각국이 통화정책 운용을 ‘이기적’으로 할 만한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2009년 미 국방부가 실시한 모의 금융 세계대전 이야기를 통해 미국이 1930년대나 1970년대와 비슷한 금융위기 시대로 진입했다고 선언한다. 이어 현재의 국제통화 체제가 확립돼 온 역사를 되짚어 보고 1930년대와 1970년대에 있었던 통화전쟁을 돌아본다. 또 2010년 극심했던 ‘3차 통화전쟁’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류경제학을 비판하고 금본위제, 다수의 기축통화 등 미래의 통화체제 모습을 전망한다.

통화 전쟁을 다룬 책은 필연적으로 달러에 대한 책이 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달러의 탄탄대로는 지속될 수 없고, 따라서 달러도 지속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대혼란으로 가는 이정표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파국을 피하기 위한 해결책을 몇 가지 제시한다. 대형 은행을 여러 개로 나누고 은행의 활동을 기본적인 금융서비스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 파생상품 거래를 대부분 금지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 질서가 해체될지, 어떤 대안이 현실이 될지 예측하기엔 이르다. 달러와 미국의 힘은 앞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란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도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섣부른 예측이라기보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토대가 절대 견고하지 않다는 경고다. 현대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통화전쟁 또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적 ‘세계 대전’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이 통화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대표적 ‘패전국’이라고 지적한다. 주요 통화의 평가절하가 발생하면 수출이 큰 타격을 받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저자의 경고가 무섭게 다가온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