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MB정부의 녹색 강박증
인간은 관념의 지배를 받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수많은 기업들이 ‘키코’라는 파생상품에 속아 수조원을 날렸던 것도 잘못된 관념의 결과다. ‘미국은 망할 것이다. 고로, 달러가치는 떨어질 것이다’는 얄팍한 3단 논법의 허망한 귀결이었다. 노 대통령부터가 미국 필망론에 사로잡혀 있었고 미국은 이미 늙은 해병대 국가일 뿐이라는 3류 반미의식이 미디어를 지배했다. 따라서 투기꾼들은 아무런 제한 장치(캡·cap)없이 달러 하락에 베팅했던 것이다. 온난화나 석유고갈 등 소위 맬서스적 종말론도 대부분이 그런 운명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은 종종 등장하는 뿌리 깊은 오해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는 오해를 뒤집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자원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신념체계를 사람들은 잘 포기하지 않는다. 자원의 부존량부터가 실은 기술수준의 함수다. 돌아보면 20세기 과학계의 가장 큰 오류가 바로 자원 한계론이다.(온난화 소동도 한때의 광기로 회고될 가능성이 크다) 석유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공포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30년대의 미국이었다. 19세기 석탄고갈론의 재연이었다. 석유소비가 폭증하던 시기였으니 당연히 이렇게 퍼써도 되는지를 의심했었다. 그래서 조사해보니 40년 정도면 석유가 고갈된다는 과학적(?) 결론이 내려졌다.

40년이 지난 1970년대의 자원 히스테리는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론을 능가할 정도였다. 다시 조사해보니 이번에도 40년 정도면 고갈될 상황이었다.(로마 클럽보고서) 그러나 석유소비는 더욱 폭발했다. 한국과 중국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재작년 유엔은 또 40년 남았다는 석유고갈 보고서를 발표했다. 1980년 미국의 석유부존량은 300억배럴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2010년까지 뽑아쓴 석유가 770억배럴이었다. 2010년 확인 매장량은 또 늘어났다.

[정규재 칼럼] MB정부의 녹색 강박증
미국에서 셰일가스 혁명이 진행 중이다. 석탄 석유에 이은 제3의 에너지 혁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셰일가스는 발생량이 석탄 석유보다 적고 ‘무진장’이며 따라서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 그 결과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은 작년 초 15달러에서 놀랍게도 2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수평채굴같은 새로운 기술의 결과다. 대표 유종인 WTI 가격도 ‘이제 석유 가격은 잊어라!’고 할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이 폭락하면서 석유화학 산업이 요동을 치고 있고 발전산업도 획기적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발전 비용은 ㎾h당 태양광이 31센트, 풍력이 25센트, 천연가스는 6.5센트다. 비교 불허다. 전기요금도 일본과 독일이 15센트일 때 미국은 절반인 7센트다. 미국 석유화학의 부활이요, 제조업 르네상스의 징후다.

태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셰일가스는 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캐나다에도 무궁무진하다. 한국에 없다고 비관할 이유는 없다. 더 좋은 에너지를 더 싼 값에 쓸 수 있다. 다행히 한·미 FTA 덕분에 한국은 별도의 복잡한 절차 없이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이 돕고 있다.

실제로 석유공사는 2017년부터 국내소요량의 10%에 육박하는 적지 않은 미국산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이미 계약해둔 상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 사실을 전혀 홍보하지 않았다. 아니 모른 척했다. 왜일까? ‘잘 몰라서’가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관료들이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다. 좋은 말로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일 수도 있다. 올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예산은 1조1000억원이었다. 엄청난 예산이요, 업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거대한 지배력이다. 만일 미국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난다면 지방정부까지 포함해 몇 조원에 이르는 녹색 예산 대부분이 사라질 수도 있다. 당장 내년 예산을 타쓰기도 어려워진다. 수조원을 주무르는 관료들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일이 터지는 것이다. 작년 더반 환경회의가 죽을 쑤었다는 사실도 관료들은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모든 환경 논의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환경 예산을 쓰는 관료들의 공식발표였다. 기득권이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