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치료 힘들다고 쉬쉬?…희귀질환 숨겼다간 병 키울수도
크론병을 앓아온 가수 윤종신 등 희귀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내 환자 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까지 합할 경우 어림잡아 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소외된 환자들을 위해 유럽희귀질환기관은 매년 2월 마지막날(2월29일)을 ‘세계희귀질환의 날’로 제정,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현재 유럽, 아시아, 북미, 남미 등 세계 58개국이 참여하면서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은 소외된 소수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사회 각계각층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더 이상 묵혀 둬서는 안 될 질환이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

현재 국내에 200명 정도 환자가 있는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PNH)의 대표적인 증상은 피로감과 복통이다. 취미생활은 물론 학교와 직장생활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 피로를 느끼고, 말기 암 환자들과 같이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할 정도로 복통도 심하다. 잠을 많이 자도, 보양식을 챙겨 먹어도 피로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만성피로증후군과는 다르다. 동반 질환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복통, 빈혈, 콜라색 소변, 숨가쁨, 피로감, 인식기능 약화 등이 수시로 나타난다.

[건강한 인생] 치료 힘들다고 쉬쉬?…희귀질환 숨겼다간 병 키울수도
PNH를 앓고 있는 한 환자는 “1주일에 몇 번씩 수혈을 받는다. 수혈에 의존하지 않으면 외출을 할 수 없을 만큼 기운이 없다”며 “복통이 점점 심해져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다수 환자가 결국엔 사망에 이르는데, 주요 사망 원인은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동맥 혈전증과 신부전증이다. 장준호 서울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희귀질환 치료제는 개발 비용이 많이 들고 실패 위험도 크기 때문에 제약사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라며 “현재로선 관련 증상이 나타나면 정밀검사를 최대한 신속히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 해외에서 PNH치료제가 개발됐지만 국내 환자들은 여전히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보험적용이 안 돼 너무나 고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보험적용을 받는 희귀질환은 만성신부전, 근육병, 간질, 루프스, 호흡곤란증후군, 모야모야병, 확장성 심근병증, 크론병, 베체트병 등 불과 9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철환 한국혈액암협회 사무총장은 “희귀질환 환자들은 치료제가 개발되기 쉽지 않은 만큼, 이미 개발된 치료제에 대해서라도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보험적용 범위를 좀 더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가볍게 봤던 희귀병들

혹시나 했던 증상이 큰 병의 초기 증상이거나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어느날 거울을 봤다가 눈 안의 수정체가 비늘처럼 벗겨지는 현상을 목격했다면 ‘거짓비늘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내장·녹내장과 함께 나이가 들면서 의외로 환자가 많은 질환이다. 대체로 안압 상승으로 두통, 어지럼증, 앞이 뿌옇게 잘 안 보이는 현상, 충혈 등이 나타난다.

입안이 자주 헐고 눈에 염증이 반복되는 경우 베체트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혀 주위 점막의 궤양이나 입안 깊은 곳, 후두 주위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외음부 궤양과 포도막염과 같은 안구 질환을 동반하고 심할 경우 피부와 관절, 위, 소장 및 심장에까지 염증이 전이될 수 있는 만성염증성질환이다.

여성에게서 많이 발병한다. 과도한 업무, 각종 스트레스와 유해환경 등이 면역반응을 저하시키면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가 어두운 곳에서 물체를 잘 찾지 못하거나 극장 등 어두운 실내에서 손짓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자주 한다면 ‘망막색소변성증’일 가능성이 있다.

몇 년 전 개그맨 이동우가 앓아 유명해진 질환이다. 망막의 시세포가 서서히 사라지는 진행성 망막질환이다. 아직까지 원인 불명이다. 국내에 1만5000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 방법도 아직은 없다.

김진국 강남밝은세상안과 대표원장은 “희귀질환 가운데 의외로 눈과 연관된 질환이 많다”며 “과도한 음주나 흡연, 지나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각종 희귀질환에 대한 노출 빈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김진국 <강남밝은세상안과 대표원장>, 장준호 <서울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