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철도·에어컨·자동차 같은 부품 쓴다
지난해 3월 도요타는 충격에 빠졌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마이크로컨트롤러(자동차 엔진, 변속기 등을 제어하는 반도체 모듈)를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는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이 회사 이바라키(茨城)현 공장이 지진으로 멈춰섰지만 도요타는 르네사스의 어느 지역 공장에서 마이크로컨트롤러를 생산하는지 전혀 몰랐다. 속수무책이었다. 도요타는 전체 자동차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밖에 없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최신호에서 “최근 대지진과 태국 홍수로 서플라이체인(부품 공급망)이 붕괴해 혼란을 겪은 일본 기업들이 기존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 묘수 찾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한눈에 전체 그림 파악하라

‘르네사스 충격’을 받은 도요타가 찾은 대안은 ‘가시화’ 정책. 1~7차 협력업체가 생산하는 모든 부품의 이동 경로를 한눈에 파악하는 프로젝트다. 예를 들면 대형 스크린을 보면 A라는 협력업체가 B공장에서 생산한 변속기 3000개가 C도로를 통해 도요타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이를 위해 슈퍼컴퓨터를 활용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그동안 1차 협력업체에만 집중해왔다. 이 업체가 어떤 2차 협력업체로부터 부품을 조달받는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사사키 신이치 도요타 부사장은 “특정 공급업체가 생산을 중단하면 도요타의 어느 공장, 어떤 차종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힘들었다”며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후지쓰는 특정 공장이 피해를 입으면 3일 내에 다른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키로 했다. 대지진 때 후쿠시마현에 있는 데스크톱PC 공장 기능이 마비되자 시마네현 노트북 공장으로 10일 만에 옮겼다. PC 공급이 10일간 지연되자 매출은 큰 타격을 받았다. 공장 간 사용하는 부품이 다르고 생산 시스템도 달라 혼란에 빠졌다. 이에 따라 3일 내에 생산공장을 이전하고 부품을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철도, 에어컨 등에도 같은 부품 쓰기로

부품 표준화는 일본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추진 중인 과제다. 태국 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혼다는 그동안 지역별로 다른 부품을 사용했지만 이를 통일시키기로 했다.

혼다는 오토바이 부문에서 ‘C8G3’라 불리는 개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오토바이에 사용되는 부품의 80%를 3개 업체에서만 사들이는 것. 성공적으로 평가받은 이 표준화 프로그램을 자동차 부품 구매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히타치의 계획은 훨씬 더 파격적이다. 철도 에어컨 냉장고 자동차 등 전혀 다른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도 공용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위기 대응 능력도 제고하겠다는 목표다. 후지쓰도 부품을 세계 어디서나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품 클라우드 서비스’ 계획을 추진키로 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그동안 일본 기업들은 공급망을 정비해야 한다고 인식하면서도 이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새로운 서플라이체인이 구축되면 위기에 빠진 일본 업체들이 극적으로 되살아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