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의 야망…'글로벌 레저' 20년 꿈 이뤘다
1990년대 초 주요 일간지에 이랜드 관련 소식이 실렸다. 이랜드가 사이판에 호텔을 짓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자그마한 패션업체에 불과했던 이랜드에 국내외 레저업체들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더 이상의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이랜드가 패션사업과 유통사업에 주력한 나머지 레저사업 진출을 보류한 탓이었다.

하지만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사진)은 레저사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1996년 뉴설악호텔(현 설악 켄싱턴호텔)을 시작으로 하일라콘도(2006년)와 한국콘도(2009년)를 차례로 인수하며 대명, 한화에 이어 레저업계 3위로 올라섰다. 대구에 있는 테마파크인 C&우방랜드와 한강유람선 운영업체인 C&한강랜드도 손에 넣으며 레저사업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랜드의 레저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고 판단한 박 회장은 20여년 전 접었던 꿈을 다시 꺼내들었다. 남태평양 사이판의 대표 리조트로 꼽히는 PIC(퍼시픽 아일랜즈 클럽)와 팜스리조트를 전격 인수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랜드는 국내에서 드물게 ‘리조트 운영 노하우’와 ‘해외 브랜드 인수 경험’을 두루 갖춘 업체”라며 “박 회장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레저사업 강화’ 방침과 ‘글로벌 진출 확대’ 전략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사이판 리조트 인수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랜드는 최근 3~4년간 만나리나덕을 비롯해 피터스캇 벨페 록캐런 등 8개 해외 패션 브랜드를 인수하며 글로벌 인수·합병(M&A)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다.

이번에 인수한 PIC사이판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대표적인 가족 휴양지로 꼽힌다. 1인당 100만~200만원을 내면 4~6일 동안 리조트에 있는 40여개 체험시설은 물론 식·음료까지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올-인클루시브’ 시스템을 도입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객실 수는 308개며 워터파크와 식당, 키즈랜드 등을 부대시설로 두고 있다.

PIC가 사이판 남부의 대표 리조트인 데 비해 팜스리조트는 사이판 북부지역의 ‘얼굴’ 역할을 하는 휴양 호텔이다. 313개 전 객실을 모두 바다를 볼 수 있는 ‘오션 뷰’로 설계한 게 강점이다. 이랜드는 리모델링을 통해 팜스리조트를 최신식 휴양 리조트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구상이다.

이랜드는 사이판 리조트 인수를 계기로 국내외 레저사업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여행전문 업체인 투어몰(세중투어몰의 후신) 등을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 여행사를 두면 한국여행에 나선 외국인들을 켄싱턴, 렉싱턴 등 이랜드 계열 호텔·콘도로 자연스럽게 유입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사이판에 여행갈 때는 PIC 및 팜스리조트에 묵도록 유도할 수 있어서다.

테마파크 조성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랜드는 제주도나 강원도 고성 중 한 곳에 대규모 테마파크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가 최근 목돈을 들여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다이아몬드 반지(101억원)와 영화 ‘시민 케인’의 오스카 트로피(10억원)를 경매를 통해 사들인 것도 테마파크를 꾸밀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랜드는 자금여력이 충분한 만큼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여행·레저 분야에 대한 투자는 확대될 것”이라며 “상당수 유럽과 일본 기업들이 보유자산 매각을 서두르고 있는 만큼 이랜드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빌딩 리조트 등 해외 자산을 매입하는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