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오펠(GM의 유럽 자회사)을 살리기 위해 한국GM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GM이 파산 직전인 오펠을 구하기 위해 한국의 일부 생산물량을 유럽으로 이전할 것이란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13일 한국GM 사장이 GM의 글로벌 생산을 총괄하고 있는 인물로 전격 교체되자 업계에서는 이 같은 관측이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GM이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현지 자회사의 경영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제조업과 고용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GM 생산기지 이전 왜

GM은 2009년 미국 정부에서 공적자금을 받은 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오펠을 포함해 유럽법인은 2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에만 2억92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특히 오펠은 2010년에만 16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기록, 파산신청설까지 나올 정도다.

GM은 여러 차례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업체로 매각을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게다가 재정위기 여파로 유럽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자 매각은 사실상 어렵게 돼버렸다.

GM 경영진은 이미 오펠 처리 방향을 결정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스티브 거스키 GM 부회장 겸 오펠 이사회 의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오펠을 팔지 않겠다”고 말했다. 댄 애커슨 GM 회장은 “3월 말까지 오펠을 살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매각 대신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GM은 그동안 오펠의 벨기에 앤트워프 공장을 폐쇄하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오펠과 한국GM의 생산 차종(크루즈)이 비슷해 한국GM의 유럽 수출이 증가할수록 오펠 판매는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따라서 한국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쉐보레를 유럽에서 생산한다면 오펠의 공장을 효율적으로 가동하게 되고 생산 단가도 줄일 수 있다는 게 GM 측의 판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커슨 회장은 “환율변동의 위험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현지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산공장 생산물량 이전

외신들은 GM이 한국GM 군산공장의 쉐보레 크루즈와 올란도의 생산(연간 26만대)을 각각 폴란드 글리베체 공장과 독일 보쿰공장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독일 보쿰공장은 가동률이 현저하게 떨어져 오펠의 유럽공장 가운데 ‘폐쇄 예정 1호’ 공장으로 지목되는 곳이다.

업계 관계자는 “GM의 한국 공장과 유럽 공장의 생산량은 시장수요를 훨씬 넘어서는 과잉생산 단계에 있다”며 “오펠이 자체 모델의 생산을 줄이고 쉐보레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GM 군산공장은 현재 3300명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생산물량 이전이 강행되면 상당수 근로자들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라 변속기를 만드는 보령공장의 물량도 감소하고, 협력업체들의 일감도 줄어드는 등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한국GM 노조 측은 “GM의 진의를 파악 중”이라며 “(그게 사실이라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업계는 이날 한국GM의 신임 사장으로 선임된 존 버터모어 GM 해외사업부문 생산총괄 부사장이 이 같은 생산물량 조정을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9년 10월부터 한국GM 사장을 맡았던 아카몬 전 사장은 고국인 캐나다로 돌아가 타 업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2대주주 산업은행의 견제?

한국GM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17%) 관계자는 “GM으로부터 생산물량 이전 계획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GM이 한국GM의 총 자산 5% 이상을 매각하거나 자회사 간 이동하려면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주주 간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GM은 2대주주의 권리에 심각한 침해가 있는 일을 단독으로 하지 못한다”며 “쉐보레 생산물량 일부를 가져간다면 반대급부로 다른 차종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모/최진석/전예진/류시훈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