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호승 詩 제목이 '수선화에게'인 이유는
[책마을] 정호승 詩 제목이 '수선화에게'인 이유는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중)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사람이면 누구나 외로운 것이니 울지 말고 외로움을 견디라고 말합니다. 알고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새도,꽃도,산그림자도,종소리도,심지어는 하느님까지도 외롭다네요. 그러니 참고 견디랍니다…시인의 위로와 충고가 내게는 도움이 되는데,당신에게는 어떤가요?"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는 시를 주제로 한 소통과 어울림의 공간이다. 5년 전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통해 문학과 철학을 맛깔나게 버무려낸 저자가 이번에는 시와 철학의 만남을 선사한다. 카페에는 한용운 이상 김소월 서정주 김수영 시인을 비롯해 강은교 김남조 문정희 최승자 김지하 정희성 정호승 신경림 김혜순 도종환 등 40여명의 시인들이 자리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푸코와 같은 철학자들도 등장한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삶과 사랑을 노래한 시 90여편을 읽으며 시에 대해,철학에 대해,삶에 대해 수다를 떨자고 손짓한다.

저자는 시를 이리저리 분해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시를 즐기는 방법을 바꿔보라고 권한다. 철학의 눈으로 시를 보라는 것이다. 시에 담긴 시인의 은밀한 의도를 알아내거나 시를 학문적으로 분석해 평가하는 것은 평론가의 몫.대신에 시가 인간 존재에게 던지는 질문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철학 이론을 도구 삼아 작품을 해석함으로써 드러나는 삶의 지표와 방향성을 찾자는 게 책의 의도다.

"상식대로라면 먼저 내가 있어야 '그대'가 있지요. 왜냐하면 '그대'란 나의 상대로서만 존재하는 대상의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

저자는 김남조 시인의 시 '그대 있음에'의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라는 구절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의 '그대(toi)-이론'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존재물의 세계에서는 내가 있어야 그대가 있지만,존재의 세계에서는 그대가 있어야 내 존재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존재론적 사유를 설명한다.

"정호승 시인은 시의 제목을 왜 '수선화에게'라고 지었을까요. " 저자는 이같이 묻고 그 어떤 철학자보다 뛰어난 외로움에 대한 시인의 해석을 읽어낸다. 수선화가 상징하는 '나르시시즘'과 관련한 신화적인 의미가 아니라 외로워서 너무 외로워서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물가를 떠나지 못하는 수선화를 표현했다는 것.그는 "이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해석을 알지 못한다"며 "시인이 읊은 외로움은 오직 이 세상에 혼자 내던져졌다는 '실존론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떠나고 싶은 자/떠나게 하고/잠들고 싶은 자/잠들게 하고/그리고도 남는 시간은/침묵할 것.//또는 꽃에 대하여/또는 하늘에 대하여/또는 무덤에 대하여//서둘지 말 것/침묵할 것.'(강은교의 '사랑법' 중)

저자는 이 시를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읽어낸다. 자기 안에 있는 굳은 날개를 다시 펼치고,잠자는 별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 강은교 시인이 말하는 사랑법,곧 자기사랑법이라고 이야기한다. 키르케고르와 하이데거의 입을 빌려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죽음이라는 가능성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고,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찾아 그것에 '기획투사'하라는 것이다.

책은 시의 정신으로 살았던 시인들의 삶의 철학을 통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삶의 무게에 치여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시들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