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의심은 종교의 라이벌…인류발전 '숨은 공신'
[책마을] 의심은 종교의 라이벌…인류발전 '숨은 공신'
기원전 467년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떨어진 운석을 보고 태양이 헬리오스 신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바윗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의 불경스러운 주장은 기원전 438년 무신론을 탄압하는 법의 제정으로 이어진다. 아낙사고라스는 "영험한 신을 믿지 않는 자들 혹은 하늘의 일에 관한 학설을 가르치는 자들을 고발해야 한다"는 법에 의해 최초로 고발됐다. 종교와 과학 간 오랜 갈등의 기원이 된 사건이었다.

모든 신앙의 전통에는 의문과 의심,불신의 기록이 있었다. 위대한 종교 경전들에도 긍정과 부인이 혼재한다. '믿음의 역사' 이면에는 활발한 '의심의 역사'가 존재했다.

《의심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2600년 동안 동서양에서 제기된 '종교적 의심'을 추적한다. 미국 역사학자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는 믿음과 확실성이 지배적인 시대,문명이 정점에 선 순간보다는 몰락하고 해체돼 의심이 팽배해지는 역사의 과도기에 주목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유대교,힌두교,불교,자이나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전 세계 종교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추적하고 '의심의 역사'를 복원한다.

그는 다양한 의심을 과학(유물론과 합리주의),비신론적 초월론,세계주의적 상대주의,우아한 삶의 철학,부당함에 대한 도덕적 거부,철학적 회의주의,신앙인들의 의심 등 7가지로 분류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천체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경탄이 의인화된 신의 숭배로 이어졌다고 의심했다. 그의 원자론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고,19세기에 이르러 과학이론으로 인정받았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됐고,스피노자는 유대인이 신이 선택한 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가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했다. 과학에 기반을 둔 의심의 사례들이다.

동양에서 의심의 역사는 어땠을까. 저자는 동양에서 신의 존재는 거의 의문의 중심에 있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힌두교에는 여러 신이 있었지만 그들은 세계를 창조하거나 유지하지 않았고,불교는 인도의 전통적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 힘도 거부했다. 유교와 도교도 모두 무신론적이었다. 저자는 동양인들이 발전시킨 해답은 비신론적 초월론이었다고 말한다.

의심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뒤얽히면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았다. 예컨대 무신론자이면서도 위대한 문명을 이룬 중국인들의 존재는 르네상스기 유럽의 의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의심'과 '믿음'은 끊임없이 불화했을까. 책은 위대한 신앙인과 위대한 의심가는 상대적으로 무심하게 순응하는 대중보다 더 큰 유사성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또 역사적으로 의심이 믿음을 더욱 강화하고 종교를 고무시켰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에서 아우구스티누스,데카르트,파스칼에 이르기까지 의심의 문화 이후에 현대 신앙의 중심인 적극적 믿음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믿음과 의심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의심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곧 오늘날 과학과 종교의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화해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

책에는 여러 흥미로운 의심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신론을 공격하는 책을 읽다가 오히려 이신론에 매료됐으며,《자연사》로 유명한 로마시대 학자 플리니우스는 하늘에서 피 비가 내릴 수는 있어도 사후세계는 못 믿겠다고 말했다. 19세기 영국 정치가 찰스 브래들로는 '서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동료 국회의원들에 의해 시계탑에 갇힌 마지막 수감자가 됐다. 알와라크,알라완디 등 알라와 무함마드,코란까지도 의심한 중세 이슬람의 의심가들을 소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