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것 자체가 음악이죠.우리말처럼 구사하기에 따라 근사한 소리와 맛을 내는 언어가 또 있을까요. 전 서울에서 태어났는데도 사투리가 음악적이라는 생각을 늘 했고 관심도 많이 갖고 있죠."

장기하(29 · 사진 오른쪽)에게선 '장맛'이 난다. 오랜 시간 숙성시켜 제대로 묵은 장맛.'싸구려 커피'로 2009년 스타덤에 올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거품'과 '한국적인 록음악을 이어갈 차세대 스타'로 갈렸다.

최근 정규 2집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이 나오자 '거품' 소리는 없어졌다. 예약 앨범 1만5000장이 순식간에 매진됐고,추가 5000장도 단숨에 팔렸다. 3일간의 콘서트 티켓 역시 반나절 만에 동이 났다.

손가락 춤만으로 3분44초를 이어간 초저예산 뮤직비디오 '그렇고 그런 사이'는 20일도 안 돼 25만건 이상의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운율이 딱딱 맞는 가사를 읊조리며 구수하게 내뱉는 창법으로 '장기하 스타일 굳히기'에 성공한 것.뮤직비디오는 그가 기획하고 연출했다.

"저는 전략가예요. 철저히 계획하는 사람이죠.머리 많이 굴려 고민하고 시나리오를 짭니다. "

2집의 전략은 '밴드다운 밴드'였다. 언더 그라운드에서 잔뼈가 굵은 키보드 연주자 이종민을 영입했다. 서울대 후배인 드러머 김현호,베이시스트 정중엽,기타리스트 이민기가 얼굴들이다. "1집이 처음부터 혼자 작사,작곡,편곡 다 해보자는 '원맨쇼' 개념이었다면 2집은 악기를 더 잘 다루는 멤버들과 함께 시너지를 내고 싶었죠.편곡도 공동으로 했어요. "

각각 다른 밴드에서 연주하던 멤버들도 2집 활동을 하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고 했다. 1960~1970년대 해외 록밴드들을 추종하던 그룹의 멤버였던 정중엽은 "싸구려 커피,달이 차오른다 등을 듣고 진짜 충격받았다. 한국 록은 좀 촌스럽지 않느냐는 게 대세였을 때 장기하의 음악은 완전히 달랐고 신선했다"고 얘기했다.

장기하는 천생 무대체질이다. 지난 17~19일 콘서트 때 2시간 반 동안 무대를 휘젓고 다니면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어릴 때부터 연극 춤 노래 다 해봤어요.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작곡하고 밴드 꾸리고 뭔가 판 짜서 일 벌이는 걸 좋아했어요. "

그는 '산울림' '송골매' '사랑과평화' 등의 영향을 받았다. "2005년 전후로 '눈뜨고 코베인'이란 그룹에서 드럼을 칠 때였어요. 그때 산울림밴드의 모든 곡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죠.우리 대중음악이야말로 정답을 향해 가고 있었구나,지금 정답에서 많이 멀어진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후 신중현,송골매,이장희,송창식,사랑과평화 등을 찾아들으며 한국에서 음악하는 게 정답이라고 확신했죠."

그는 욕심이 많다. 방송 활동을 병행하면서 내달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이어 여러 차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첫 뮤직비디오도 이 정도면 홈런이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한 미셸 공드리가 와도 저보다 더 낫게 만들진 못했을 거예요. 첫 작품이라 걱정도 됐지만 제가 만든 노래를 저보다 더 잘 이해하고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또 있겠어요.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