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는 지금] "상가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되살아나는 믿음
서울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 사는 이모씨(76)는 30억원 안팎의 상가 건물을 한 동 매입할 계획이다. 그가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서 상가로 다시 눈을 돌린 것은 금융상품 투자로 생각지도 않은 쓴 맛을 본 까닭이다.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신청을 앞두고 판매한 LIG건설의 기업어음(CP) 2억원어치를 산 것이다. 그는 가장 안전하고 고정 수입을 주는 것은 상가 건물 같은 수익형 부동산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 반포동 반포자이에 사는 대기업 임원 김모씨(58)는 최근 판교신도시 단지 내 상가 한 동을 통째로 샀다.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을 34억원에 매입했다. 30억원대 자산을 갖고 있는 그는 보증금을 끼고 융자없이 10여억원으로 상가를 샀다.

강남 부자들이 상가 건물 사냥을 시작했다. 설 연휴 이후 주택시장이 다시 얼어붙고 토지 가격은 더 오르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서다. 경제성장률만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상가 건물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투자 대상이란 믿음이 강남 부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매력 끄는 요인들

전문가들은 상당히 큰 규모의 유동자금은 투자처가 상가 건물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금리와 물가 상승이 예상돼 이를 피하려는(헤지하려는) 수요가 상가 건물로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상가 시세가 오른 학습 효과도 있다. 강남권 요지의 상가 건물은 최근 5년간 3.3㎡당 5000만원에서 1억원대로 올랐다는 점이 근거다. 강남권 상가 건물은 환금성도 나쁘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상가 건물 투자 수요의 80%가량은 강남에 몰린다고 전했다.

국토해양부가 조사한 작년 매장용 빌딩의 연간 투자수익률도 크게 상승했다. 2009년 5.19%로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주택시장 약세에 따른 상가 대체 투자 수요 증가와 경기 회복 기대감 등으로 지난해 6.85%로 높아졌다. 지난해 매장용 빌딩 연간 수익률은 서울이 7.52%로 가장 높았고,부산(6.68%) 대전(6.64%) 인천(6.34%)이 그 뒤를 이었다. 매장용 빌딩이란 전국 87개 주요 상권의 3층 이상,임대면적 50% 이상 매장용 건물을 말한다.

국토부가 산출한 투자수익률은 임대료 등 소득수익률과 부동산 가격 증감에 따른 자본수익률을 합한 수치다. 강남권 상가 건물의 연간 수익률이 3~4%밖에 되지 않는다고 할 때는 임대 수익만 계산한 숫자다. 임대수익률만 놓고 보면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결국 상가 건물 매입은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시세차익을 기대하기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저금리 시대에 금융자산에만 돈을 묶어둘 수도 없다"며 "향후 물가 상승을 우려해 실물로 자산을 바꾸려는 부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노령층 세대가 선호

은퇴하면 부동산보다 현금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통념도 깨지고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의 설명이 재미있다. "자산 컨설팅을 할 때 으레 '나이 들면 현금 비중을 늘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강남 부자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현금화를 많이 한 부자일수록 자산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자식들 사정 봐주고 뭐하고 하다 보면 그렇게 된답니다. "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으면 일부를 떼어내 팔기가 쉽지 않다. 지출 규모를 임대 수익에서 맞출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돈을 방어하는 능력'이 커진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강남 부자들의 투자 패턴은 부동산 비중을 늘리는 쪽이라고 고 지점장은 설명했다.

A급 매물 갈수록 줄어
[강남부자는 지금] "상가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되살아나는 믿음

상가 건물 매물은 강남지역에도 적지 않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좋은 입지의 A급 물건은 시세가 계속 올라가고 물건 수도 갈수록 감소하는 상황이다. 박합수 국민은행 PB본부 부동산팀장은 매도자는 급할 게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상가 건물을 보유한 사람들은 매입 당시 투자금이 적었던 만큼 임대 수익률이 연 5~6%는 나온다"며 "팔아서 양도소득세로 20~30%를 내기도 마뜩잖고 대체투자 상품도 별로 없어 매물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 부자들이 찾는 상가 건물은 대개 가격이 50억~100억원대,상가 층수는 5층 전후,땅 넓이는 대지 330㎡ 이상이다.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 이면도로의 상업지역에서는 3.3㎡당 1억원을 호가한다. 3종 주거지역이면 7000만~8000만원에도 가격이 형성된다. 서초동 교대역 부근과 청담동 등의 물건도 많이 찾는다.

물론 강북에도 투자처는 있다. 고준석 지점장은 "투자자를 위해 B급 지역인 갈월동 숙명여대 앞 상가 건물 25억원짜리를 보고 왔다"며 "대지 300㎡,지상 4층,연면적 900㎡의 건물인데 월세만 1100만원이 나온다"고 전했다. 월세 수준에 비춰 25억원은 투자할 만한 가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