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먼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1999년 '최적 통화 지역'(optimum currency areas)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국제경제학 분야의 최고 석학이다. 각국 경제가 어떤 규모에서 단일 통화를 사용하면 가장 큰 효과를 낼 것인지 분석한 이 이론은 같은 해 공식 출범한 유로화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덕분에 그에게는 '유로화의 아버지'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유로화 출범 후 10년이 지난 지난해 말 그리스를 필두로 재정위기가 불거졌고,이후 유럽 각국으로 번지면서 유로화의 존립을 뿌리째 흔들어놨다.

'유로화의 아버지'는 과연 이 같은 유로화의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슨 해법을 갖고 있을까.

◆세계 경제의 화약고가 된 유로존

지난 5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는 화염병과 최루가스가 난무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공공노조연맹과 노동자총연맹 등 그리스 양대 노총이 함께 주최한 집회에는 10만여명이 몰려들었다. 폭력 시위에 따른 피해도 잇따랐다.

그리스에서 이 같은 소요가 계속되는 것은 정부가 지난 5월 유로존 16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3년간 총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신 2014년까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하로 낮추는 강력한 긴축 프로그램을 이행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재정 긴축은 연금 삭감과 공무원 임금 삭감,공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적 반발을 초래했다.

먼델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그리스 정부가 종국에는 재정 긴축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최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5년 내 그리스를 포함한 유로존 국가 중 1~2곳은 채무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발부터 불안했던 유로화

먼델 교수의 '최적 통화 지역' 이론에 따르면 단일 통화를 도입할 경우 역내 국가들은 생산성 향상,거래비용 감소 등 통합에 따른 이득을 본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자본이나 노동과 같은 생산요소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했다. 게다가 국가 간 불균형이 심각했다.

유로화가 출범하기 전인 1994년부터 1998년까지 5년간 그리스의 연평균 경상적자는 GDP의 2.3%에 불과했지만,1999년 이후부터는 8.8%로 커졌다. 반면 당초 경상적자(GDP의 5%)를 안고 있던 독일은 유로화 출범 후 흑자(2.9%)로 돌아섰다.

◆그래도 단일 통화가 낫다

먼델 교수는 그럼에도 여전히 단일 통화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는다. 그는 "유로화가 만병 통치약(panacea)이 되길 기대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지난 10년간 유로화가 이뤄낸 성과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로화의 성과로 △자본비용의 감소 △환율 변동의 불확실성 제거 △유로존 내 투기자본 이동 방지 △정보 및 거래비용 감소 등을 꼽는다. 먼델 교수는 "유로존 내 기업들은 유럽 대륙 전체 자본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에서 두 자릿수에 달하던 금리가 연 5%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아시아 공통 통화도 도입할 만

한국은 제조업 등 실물경제가 탄탄하지만 상대적으로 환율 변동에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로서 3000억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액을 쌓아두고 있지만,대부분 미국 국채 등 수익률이 낮고 안전한 자산 위주로 운용해 외환 보유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먼델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시아 공통 통화를 도입해 볼 만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위안화와 엔화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다만 아시아 국가들 간 교역에 이용할 수 있는 공통 통화를 도입해 달러화에 고정시킨다면 아시아 역내 환율 변동에 따른 비용을 상당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안화 절상 압력은 잘못

먼델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절상을 목적으로 입법을 추진 중인 중국 제재 법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입법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적자도 줄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법안이 통과되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뿐 아니라 아시아의 경제 안정까지 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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